2016년 10월 10일 03시 51분
초록
20세기는 생물학의 시대로 불린다. 20세기 중반 DNA의 발견과 20세기 후반의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생물학이 인간과 생명의 비밀을 밝혀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기대와 달리 오늘날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생물학을 페미니즘의 대의와 충돌하는 가부장적 학문이자 사이비과학으로 규정한다. 생물학에 대한 이런 적대는 1970년대 중반 사회생물학 논쟁의 결과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 사회생물학이 제시한 성차 개념은 현존하는 성별분업을 옹호하고 남성의 능동성과 여성의 수동성을 자연화하여 여성 종속의 영속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의 생물학 주로 진화론에 대한 이런 견해와 태도는 진화론의 출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쉽게 일반화될 수 없다. 19세기 후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운동의 정당화 근거로 진화론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말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과 결합하여 그 내부에서 남성편향을 수정하고자 시도한다. 다른 시기의 사례들을 놓고 볼 때 페미니스트들이 생물학과 진화론을 사이비과학으로 보고 적대시하는 태도는 1970년대 전후한 예외적 정세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이 각 시대마다 진화론과 맺은 상반된 태도들은 진화론의 ‘남성적 편견’이라는 단일 척도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다윈 진화론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본 반면 사회생물학은 여성을 남성에 비해 ‘수동적’ 존재로 보았다. 이렇게 다윈의 편견은 사회생물학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페미니스트들은 다윈 진화론을 ‘수용’한 반면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생물학을 ‘기각’했다. 이런 상반된 결과는 ‘남성적 편견’ 이면에 양자의 성차 개념에 작용하는 지적 요소들에 대한 더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적 편견’의 정도와 무관하게 진화론을 수용하거나 기각한다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구체화된다.
첫째, 역사적 시기마다 진화론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계가 달랐다면 구체적으로 그것은 각각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둘째, 진화론과 페미니즘의 성차 개념에 영향을 주는 지적 요소인 젠더 이데올로기와 과학 이데올로기는 이 관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셋째, 20세기 후반 진화론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적 개조의 노력은 진화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것은 진화론의 ‘남성편향’을 개조하고 진화론을 변화시켰는가?
본 논문은 진화론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과 수용의 역사를 분석하기 위해 양자의 공통 관심인 성차 개념을 분석하였다. 진화론과 페미니즘의 성차 개념은 각 시기에 고유한 젠더 이데올로기와 과학 관념 즉 과학 이데올로기를 통해 분석되었다. 또한 젠더 이데올로기와 과학 이데올로기는 각각 해당 시기의 가족형태와 지적 공동체를 통해 설명하였다.
진화론과 페미니즘이 조우했던 세 역사적 사례는 19세기 후반,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후를 배경으로 하며 여기서 양자의 성차 개념을 비교·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진화론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19세기 후반 페미니스트들은 다윈 진화론에 대해 ‘비판적 수용’의 태도를 취한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생물학에 대해 ‘비판적 기각’의 태도를 보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진화론적 페미니즘’은 진화론과 결합하여 남성편향을 직접 수정하는 ‘비판적 개조’의 태도를 취한다. 역사적 시기마다 진화론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보인 태도의 차이는 진화론의 ‘남성편향’의 정도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둘째, 통념과 달리 진화론과 페미니스트들의 성차 개념에 반영된 젠더 이데올로기와 과학 이데올로기는 완전히 상반된 것은 아니었으며 대립적 차원과 공통적 차원이 존재하였다. 진화론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이 보인 관계의 역사적 차이들은 이 공통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