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03시 51분
초록
근대세계체계의 헤게모니국가나 강대국들은 세계적인 무역과 산업, 금융 네트워크를 발전시킴으로써 부와 권력을 축적했고, 부와 권력을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외기지네트워크를 건설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식민지․제국체제가 붕괴하고 민족주의와 평화주의가 고양되자, 해외기지네트워크는 정치적으로 취약해졌고, 반(反)기지운동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미국은 세계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탈식민주의를 용인하는 대신 동맹국과의 집단안보조약이나 양자협정을 통해 해외기지네트워크를 건설하고 확장했다. 해외기지의 설치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세계전략이나 지역적(regional) 정세에 따라 결정되었지만, 이제 기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책임은 동맹국 정부의 몫으로 돌아갔다. 기지의 설치로부터 발생하는 기지피해는 몇몇 지방(local)에 떠넘겨졌다. 식민지․제국체제에서 종주국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졌던 문제의 소재가 다층화된 것이다.
전후 세계체계에서 기지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반기지운동이 가장 활성화된 곳은 동아시아였다. 냉전체제 하에서도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들이 빈번했고, 미국의 참전은 기지네트워크를 통해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을 전쟁에 참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동아시아에서 전쟁의 지속은 한편으로 안보불안을 이유로 미군의 주둔을 요청하는 움직임을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전쟁에 반대하고 기지피해에 항의하는 반기지운동을 성장시켰다.
본 논문의 과제는, 20세기 중반 이후 지속된 동아시아의 전쟁에서부터 현재의 전쟁세계화 국면까지, 동아시아 미군기지에 저항해 온 반기지운동의 동학을 해명하는 것이다. 본 논문이 해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후 동아시아 지역(regional)의 반기지운동은 동아시아라는 지평을 상실한 조건 속에서 전개되었다. 전후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는 미소간의 냉전체제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대립,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식민주의적 대립의 지속, 중국과 대만의 분단, 남한과 북한의 분단, 베트남의 분단, 일본에서 오키나와의 분리라는 다층적인 분리․분단의 체제, 즉 ‘동아시아 분단체제’에 의해 규정되었다. ‘동아시아 분단체제’는 반기지운동의 배경이 될 시민사회를 여러 층위에서 분리․분단시켰다. 그 결과, 동아시아 지역의 반기지운동은 국가 상위 스케일의 형성을 봉쇄당한 채 국가(national) 스케일과 지방(local) 스케일에서 독자적으로 혹은 양자가 융합된 형태로 전개되었다.
둘째, 동아시아 지역의 시민사회가 여러 층위에서 분리․분단되어 있었던 반면, 동아시아 냉전의 양 진영은 군사동맹에 의해 결합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진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적 군사동맹을 통해 연결되었고, ‘동아시아 분단체제’ 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가간 대립은 미국에 의해 조정되었다. 일차적으로, 자본주의 진영의 연결은 미군기지네트워크에 의해 구축되었다. 미군의 기지네트워크는 자본주의 진영의 동맹국들을 군사적으로 연결하면서, 동시에 전방의 국가들에 지상군을, 후방의 국가들에는 해군과 공군을,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허브로서 오키나와에는 해병대와 공군 등이 분업적으로 배치되었다. 또한 ‘전방’의 국가들은 군사정권이나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국방에 힘을 쏟는 ‘중무장’노선을, ‘후방’의 국가들은 민주주의체제나 느슨한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에 힘을 쏟는 ‘경무장’노선을 국가전략으로 삼았다. 미군기지의 분업적 배치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후방 배치 양상을 ‘동아시아 안보분업구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셋째, 국가 스케일과 지방 스케일 반기지운동이 전개되는 공간인 ‘기지국가’와 ‘기지도시’에서는 기지의 계획, 건설, 확장, 유지, 철거를 둘러싼 독특한 정치과정, 즉 ‘기지정치(base politics)’가 전개된다. ‘전방’의 기지국가인 한국에서는 무엇보다 국가보안법과 같은 억압적 법률과 공권력을 통한 강제적인 진압을 특징으로 하는 ‘억압의 정치’가 실시되었고, ‘후방’의 기지국가인 일본에서는 평화헌법 하에서 억압장치의 작동이 제한됨에 따라 고도경제성장의 과실을 분배함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