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29분
초록
본 논문은 1988년부터 2001년 사이에 한국사회에서 ‘예술영화’로 지칭되는 특정한 영화군이 소개되는 과정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영화산업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1990년대적 문화 실천의 양태를 그 담론의 구조와 효과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 시도이다. 분석을 통해 얻은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할리우드 영화의 산업적 지배와 그 속의 상업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비(非)할리우드권 영화가 적극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이는 6차 영화법 개정이라는 제도적 환경의 변화에 맞물려 직접적인 영화 수입과 연계되었다. 언론과 비평, 광고주들은 ‘예술영화’라는 담론을 통해 ‘상품’으로서의 할리우드-충무로 영화와 차별화를 시도했으며, 이를 위해 유럽권 영화들을 주로 소개했다. 둘째, 언론과 비평의 ‘예술영화’ 담론 구성 방식은, ‘영화사(映畵史)’, ‘세계 영화’ 등의 담론을 통해 ‘세계영화사’라는 상위 담론을 형성하고, 그것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로 ‘예술영화’를 배치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개별 ‘예술영화’는 ‘작가’라는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로 인식되었으며, ‘작가’는 세계영화사라는 ‘발전의 역사’를 개척하는 주체로 상정되었다. 셋째, 이러한 담론 구성 방식에서 상정된 주체는 근대적 개인 주체로서의 ‘작가-감독’, 그리고 그러한 주체를 발굴하고 승인하는 서구의 비평 권력(국제영화제, 영화평론가, 언론)이다. ‘아시아’는 ‘세계영화’의 변방에서 서구 주체에 의해 발견되기 위한 대상이자, 이와 같은 서구 중심적 지식체계의 보완물로서 존재한다. 여기서 ‘작가’는 곧 유럽화된 주체를 의미하며, ‘작가’의 영화로서의 ‘예술영화’는 유럽화된 영화, 유럽에 의해 승인 받은 영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담론 체계로 인해 ‘예술영화’ 담론은 유럽화를 지향하는 담론적 효과를 낳았다. 넷째, 이와 같은 담론구조의 반영으로서의 ‘예술영화’ 산업은 고급문화, 유럽적 문화로서 개별 작품을 포장하며, 동시에 이러한 고급 취향의 소비자로서 ‘예술영화 관객’을 차별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1998년 이후의 산업적 부진은 이러한 타겟 마케팅을 더욱 부추겼으며, 지적 자본, 문화적 자본의 소유자로서 ‘예술영화 관객’에 대한 차별적 정체성 부여가 시도되었다. 다섯째, ‘예술영화’ 관객의 집단적 정체성은, 할리우드 지향의 일반 관객의 취향을 ‘타자’로 놓고 문화적 위계를 형성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이는 유럽화/비유럽화라는 식민주의적 구획을 인식구조 속에 형성했고, 이로 인해 ‘예술영화’를 소수가 향유하는 ‘고급문화’로 한정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