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26분
초록
이 글에서는 위험을 인식하고 경험하며 대응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는 지역단위로 위험을 살펴보는 한편, 위험의 발생구조를 지역의 사회적 속성과 관련지어 설명하기 위한 분석을 시도한다. 위험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크게 거시적·문명론적인 접근과 기술적·공학적인 접근으로 대별된다. ‘위험사회’에 대한 성찰적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던 거시적·문명론적인 접근에서는 위험을 국가적·초국가적 차원이나 이와 반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때문에, 위험이 발생하는 공간적 맥락에 대한 세부적인 고찰은 상대적으로 생략되어 있어 위험관리를 위한 실천적인 연구들과의 접점을 찾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한편, 위험을 기술적·공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에는, 위험의 발생원인을 제거하고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대안의 마련에 논의의 주된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에, 위험을 사회경제적 변수들과 관련지어 실증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드물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연구에서는 기존의 이론적 논의들이 현실적인 위험분석과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위험을 인식하고 경험하며 대응하는 데 있어 준거가 되는 지역 단위로 위험의 발생구조를 해명하여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특히 사회적인 속성이 지리적 공간에서 일정한 분포를 나타내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구조를 ‘분포’로 이해하는 구조적 설명에 입각하여, 위험의 지역별 분포를 파악함으로써 위험의 발생구조를 보이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 지역사회가 위험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확보하고 있는 조직과 인력을 ‘대응 능력(response capacity)’으로 개념화하여 사회적 취약성이 형성되는 사회적 과정과 지역간에 사회적 취약성이 분배되는 방식에 주목하였다.
우선 이 연구는 중범위 수준인 시군구 지역 단위로 위험의 발생수준 및 각 지역공동체가 지니는 사회경제적 속성과 대응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위험에 관한 지표 가운데,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종종 직면하는 자살과 질병,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5대 강력범죄, 그리고 화재와 풍수해 피해의 6가지 위험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시군구를 단위로 하는 다양한 연구들을 검토하여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지역의 사회경제적 지표를 도출하였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를 기초로 GIS, MDS, 네트워크 분석, 회귀분석 등 일련의 분석을 수행하였다.
첫째, 위험은 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분포하고 있다. GIS 분석을 통하여, 6가지의 위험 가운데 질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 등은 농촌지역에서 더욱 높게 나타나는 반면, 강력범죄의 위험은 대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풍수해 피해 위험의 경우, 인근 지역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난 경우에도 특별시, 광역시 등 대도시의 구 지역은 피해액수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통적으로 농촌 지역의 위험이었던 풍수해가 점차 도시 지역에서 우세한 위험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본 서구의 연구결과(Green, 1994)가 우리 사회의 위험을 설명하는 데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지역간 위험의 격차가 뚜렷하다는 주장은 GIS 분석뿐만 아니라 분산분석의 결과에서도 입증되었다.
둘째, 위험과 성장의 ‘공진화(coevolution)’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근대화 및 산업화의 경험을 서로 다르게 내재화하고 있는 공간적 맥락에 주목하여, 동일한 지역 공간 내에 성장과 위험이라는 두 개의 현실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MDS 및 대응분석을 통해 보이고자 하였다. 이는 현대사회의 불균형적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과 위험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기존의 문명론적 담론이 지니는 타당성을 경험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였다. 그 결과, 경제성장의 경험이 유사한 지역은 위험이 발생하는 양상도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위험은 지역사회의 변화 양상을 일정 부분 반영하며 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위험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하여 지역의 사회경제적 요인들과 위험을 관련짓는 분석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6가지 위험을 종속변수로, 지역의 사회경제적 요인을 설명변수로 하는 회귀분석을 실시한 후, 결과에서 유의하게 나타난 변수를 정리하여 그 연관관계를 나타내었을 때, 위험의 발생 구조 속에서 위험은 지역의 사회경제적인 속성을 서로 연결시켜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속성은 다시 위험간의 관계를 매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예컨대, 질병으로 인한 사망,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자살로 인한 사망은 모두 대도시와 부적인 관계에 있다는 공통점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구밀도가 풍수해 피해의 위험을 제외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자살로 인한 사망, 화재 위험, 강력범죄의 위험 등 다섯 가지 위험 모두를 매개하는 변수로 파악되었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위험을 설명할 경우, 자연적 요인으로만 위험을 설명하는 기존의 논의에서보다 위험발생의 더욱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넷째, 지역의 사회경제적 요인들은 위험의 발생뿐만 아니라 위험에 대응하는 지역사회의 능력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지역별 위험의 대응 능력 차이는 지역의 위험발생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먼저 방재,치안,의료 대응 능력을 의미하는 각각의 변수를 종속변수로 하고, 지역구분, 사회경제적 속성, 위험발생 수준에 관한 여러 지표를 설명변수로 하는 단계적 회귀분석을 실시하여 해당 지역의 대응 능력을 예측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모델에서 예측된 대응 능력을 산점도로 나타낸 후, 대도시, 중소도시, 군 지역별로 위험 대응 능력을 살펴보기 위하여 추세선을 표시하였다. 그 결과, 위험이 높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의료 대응 수준을 보이는 지역들이 발견되었으며, 위험에 대한 지역의 사회적 취약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해당 위험을 담당하는 조직의 확보 여부라는 주장이 지지되었다.
위험의 발생수준과 위험에의 대응 능력은 곧 사람들에게 삶의 공간적 영역이 어떠한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따라서 개별적인 사례나 거시적인 담론을 통한 위험연구의 경향을 벗어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역별 자료를 대상으로 하여 위험파악의 실효성을 높이는 위험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 연구의 결과는 시군구라는 지역단위가 위험을 관리하는 제도적·행정적인 조직의 구성체계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위험관리와 대응을 위한 정책결정에 있어 일정한 함의를 줄 수 있다. 구조적 설명에 입각한 사회생태계로 지역사회를 이해한다면, 단순히 부족한 대응 능력을 확충한다고 해서 위험의 발생량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경제적 속성과의 연관을 통해 위험이 구성되고 발생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연구는 담론적 표층에서 포착되지 않는 위험에 경험적인 접근을 시도해 본 기초적인 연구라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화될 수 있다. 그리고 자연발생적이고 불가항력적인 현상으로 위험을 이해하여 기상요소 등의 자연적 속성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던 기존 연구와는 달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구조 속에 ‘일상성’을 지닌 위험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여 사회경제적 속성으로 위험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사회적 속성과 위험의 관련성을 다각적으로 모색, 시각화하였다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본다. 향후 지역의 사회경제적 속성에 관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위험의 성격과 발생구조를 해명하고자 하는 양적인 연구들이 보다 축적된다면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위험의 발생을 더욱 많은 부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