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22분
초록
본 논문은 북한의 경제관리체계인 ‘대안의 사업체계’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북한이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나름대로 꾸준한 변화를 시도해왔음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첫째, 경제관리의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북한의 ‘대안의 사업체계’는 꾸준히 변화해왔다. 생산수단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된 후 유일관리제를 비롯한 기존 경제관리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대안의 사업체계’는, 산업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의 일원화·세부화 체계’의 도입으로 공산주의적 성격이 강조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8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이 저하되고 계획적인 경제관리가 어려워지자 연합기업소 체제가 도입되었고 ‘대안의 사업체계’는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당위원회의 위상에 대한 혼란을 잠재우고 사회주의 붕괴에 대해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재정식화된 ‘대안의 사업체계’는 기존 사회주의 원칙을 다시 강조하면서도 당비서와 지배인의 역할분담을 규정하고 있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일련의 경제 개선 조치들을 시행하면서 2000년대 ‘대안의 사업체계’에서는 계획 경제에 대한 지향이 보다 유연해지며, 당위원회의 지도 하에 지배인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둘째,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 원칙이 고수되고 있다.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 원칙은 경제관리에 군중노선을 적용한다는 ‘대안의 사업체계’의 기본정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생산의 관리권이 한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체적 지도를 담지하는 당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대안의 사업체계’에서 자재공급체계나 후방공급체계, 독립채산제 등의 변화는 ‘대안의 사업체계’ 자체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직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에 대한 모호한 규정이 ‘대안의 사업체계’에 대한 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2000년대 여러 경제관리 개선 조치들 속에서도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 원칙은 여전히 고수되고 있다. 한편, 그 내용이 변화하는 가운데에서도 “대안의 사업체계”라는 명칭이 고수되고 있는 데에는 ‘대안의 사업체계’를 안출한 지도부의 무오류적 권위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권위의 보호가 가능한 것은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라는 원칙이 여전히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북한은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나름대로 꾸준한 변화를 시도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과거 행적은 북한의 향후 행보를 전망하는 기준점이 된다. 즉, 경로의존적 발전의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이 급격한 시장적 개혁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중국과 유사하게 정치권력의 통제하에 경제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측이 훨씬 타당하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북한의 공장당위원회는 해당 기업소, 공장의 최고지도기관으로 남아 있을 것이며, 최종심급에서 공장의 소유와 경영에 대한 결정권한을 장악하고 있을 것이다.
‘대안의 사업체계’의 변화를 추적한 이 연구는 북한 연구와 사회과학적 연구에 대해, 시간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채 대상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명칭(기표)이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내용(기의)이 재구성되었다는 점은, 대상에 대한 평가에 앞서 대상의 변화를 추적할 필요가 있음을 함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