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20분
초록
사회학의 성립기에서 중요했던 것은 기존의 다른 사회과학들과 구별되는 사회학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었고, 이는 사회학이 다루는 대상과 사회학적 방법론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문제로 귀결된다. 19세기로의 전환기에 각기 사회학 내에서 프랑스의 두 갈래의 지적 흐름을 대표하던 두 사상가인 뒤르켐과 타르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상반된 해답을 내어놓는다.
뒤르켐은 개인들의 의식 외부에 사회적 사실이 존재하며 이 사회적 사실은 개인의 의식에 대해 외재적이고 강제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회적 현상들은 특수한 사회과학들의 탐구 대상이지만 또한 사회적 성격을 갖기에 이 특수한 사회과학들로만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있으며, 사회학이 다루어야 할 것은 비교 연구를 통해 사회적 현상으로부터 이러한 사회적 사실을 추출하여 설명하는 작업이다.
이에 대해 타르드는 모든 것이 이미 사회적 사실이라고 반박한다. 사회학은 특수한 사회과학들의 대상이 되는 단순한 현상들로부터 추출된 어떤 추상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 단순한 현상들조차 이미 기초적인 사회적 사실들이 결합되어서 구성된 것이다. 그는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 외부에 독립적인 설명 방식을 요구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주장은 강력히 부정하지만, 이 상호작용 자체의 매질로서 사회학의 대상이 되는 실재적인 양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며, 이 양의 질료가 표상되기 이전의 차원에서 직접적이고 사회적으로 교환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타르드의 관점에서 ‘사회적인 것’과 ‘개체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은 오류이다. 모든 개체적인 것은 이미 사회적인 것이며, 구별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것은 ‘표상적인 것’과 ‘표상되지 않는 것’, 라이프니츠의 용어로는 ‘통각’과 ‘미세지각’ 사이에서이다.
이러한 타르드의 입장은, 사회학이 자연과학과 동등한 엄밀성을 가지는 과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방법론을 좇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올바른 실재적 대상을 확립하여야 한다는 그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대상을 이루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상상적이고 환상적인 원소들에 대한 믿음을 폐기하고 대상의 실재적인 구성요소로서 원소들을 정립하는 시점이, 과학의 모태가 되었던 전근대의 마술적 학문들로부터 근대과학이 탄생하는 신기원을 이룬다고 지적하였다. 타르드는 당대 자연과학의 성과를 음미하면서, 각 자연과학들이 발달하는 과정은 이전에 그 대상의 기초적 구성요소로 간주되었던 것들이 계속 더 하위의 더 미세한 원소들로 쪼개지는 것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일치됨을 관찰한다. 그는 이에 따라 과학이 발전할수록 과학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대상에 대한 가설적 모델을 일찍이 무한히 미소하면서 개체적인 것들의 존재론을 모나돌로지의 형태로 제시한 라이프니츠의 모델과 일치시켜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학 역시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학의 대상을 구성하는 진정한 원소적인 것을 발견하여야 한다. 타르드는 사회적 현상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두 논리적 주체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전제하고, 이 두 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매질로서 ‘흐름’이 사회학의 대상이 되는 실재적인 양이라고 주장한다. 흐름 자체는 순수하게 양적인 것인데, 이 흐름이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단지 각각의 개체에 의해 이 힘이 지각되는 두 가지 방식 즉 믿음과 욕망으로서이다. 하나의 동일한 흐름이, 그 흐름을 명석하게 인식하여 사건의 목적인적 원인을 지각하는 개체에게는 욕망으로, 그렇지 못하여 사건이 작용인적 원인을 갖는 것으로 지각하는 개체에게는 믿음으로 이해된다. 결국 과학으로서 사회학이 현실에서 집계하고자 겨냥해야 하는 실재적 양은 믿음과 욕망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그가 분석한 발명, 모방, 대립의 구조는 이 미세지각의 흐름 또는 파동이 계열화되는 세 가지 논리적 형태일 따름이다.
타르드는 영혼과 신체에 관한 라이프니츠의 논리적인 구도를 수용하지만, 라이프니츠적으로 말하면 ‘세계 내에서 계열들의 현실화의 공가능성’의 담지자로서 ‘중심의 시선점’에 해당하는 신의 역할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영혼(모나드)과 신체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예정조화설 즉 영혼 안에서의 현실화와 신체 안에서의 실재화의 일치에 관한 이론은 누락된다. 근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의 집단과 의견이 형성되는 현상을 최초로 간파하고서 공중이라고 이름붙인 타르드가,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해 남긴 관찰들은, 현대 사회에서 계열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공중 이론을 영혼 안에서 의견의 현실화와 신체 안에서 ‘사건으로서 공중’의 실재화에 대한 이론으로 파악함으로써, 그리하여 타르드가 공가능성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입장에 수정을 가하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타르드에게서 공중 개념이 차지해야 하는 위치가 적절히 밝혀질 수 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까닭은, 이론화에 있어서의 이러한 차이가 정신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의 배치에 있어 근대 사회와 전근대 사회가 구별되는 양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타르드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이 도입되기 이전에 공중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매스커뮤니케이션이 “공간적으로 통합하고 시간적으로 다양화했다”고 설명한다. 라이프니츠와 타르드가 지각이 물질적, 신체적 흐름에 조응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그것이 조직되는 양식에 대해서는 지배관계에 따른 모나드들의 공간적 위계화와 의견을 공유하는 분산된 모나드들의 집합을 각기 우선적으로 고려하므로 이들은 계열화에 대한 입장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렇게 미세지각과 공중에 대한 타르드의 이론을 통합적인 논리로 이해할 때, 이는 개인적인 것과 구조적인 것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존의 사회학적 시각에 대한 하나의 비판적 준거를 마련해 주며, 또한 현대소비사회를 바라보는 유용하고 논리적인 개념틀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