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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국 여성미술가의 여성주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

2016년 10월 07일 10시 18분


초록

미술계내에서 페미니스트로 평가받았던 미술가 이불은 최근 자신의 작업이 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되길 원치 않는다고 하였다. 이처럼 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되는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가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연구는 다소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미술계 내에서 인정되는 여성주의를 ‘실질적’ 여성주의라고 칭하고 개별 여성작가 스스로가 규정하는 여성주의를 ‘실제적’ 여성주의라고 칭하여 이 두 정체성 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하였다.

작가는 작품에 자신의 정체성을 전이시키므로 작가의 정체성은 작품이라는 표현적 매개를 통해 미술계내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관람인구는 주로 미술전문인에 국한되므로 이같은 폐쇄적 구조속에서 개별 미술가의 정체성은 그 고유의 양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미술계 내에서 사회적으로 이미 형성된 ‘실질적’ 정체성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현재 미술계내에서 ‘실질적’ 여성주의는 1990년대 이후 활성화된 페미니즘 공론장과 기획전의 형태로 개최되는 여성주의 전시회들을 통해 주로 형성된다. 그러나 이같은 ‘실질적’ 여성주의 정체성은 개별 작가들의 ‘실제적’ 여성주의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설문조사와 면접결과 여성관련 작업을 하고 페미니즘 미술제에 초대되는 작가들이 스스로를 명백한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집단에 속하는 여성 작가들은 스스로를 명백하게 페미니스트로 규정하였다. 이들은 여성을 주제로 하는 각종 미술제에 자주 초대되며, 현재 미술계내에서 형성된 여성주의에 스스로를 무리없이 일치시킨다. 설문조사결과 이들은 여성주의 정체성이 확고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내용은 여성문화예술운동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집단은 여성관련 기획전에 초대되기도 하는 등 페미니즘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명백하게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이 집단은 또 다시 두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첫째 그룹은 1980년대에 민중미술과 함께 발생한 여성미술활동을 했던 작가들이거나 여성운동으로써의 80년대 여성미술의 경향을 지향하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80년대 여성미술이 보여주었던 현실변혁적 성격, 계급적 관점 등을 지향한다. 그러나 현 미술계에서의 ‘실질적’ 여성주의는 이들이 주창하는 사회변혁적인 성격, 사회운동으로써의 성격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작가들은 스스로 여성주의 정체성과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여성주의 정체성과 거리감을 두는 두 번째 그룹은 스스로의 여성주의를 여성의 삶, 여성성을 다루는 것 등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첫째 그룹과는 반대로 현재의 ‘실질적’ 여성주의가 정치적이라고 여긴다. 이 그룹에 속한 작가들은 스스로를 여성주의 정체성과 분리시키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미술계내에서 대외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됨으로써 자신들이 정치적인 속성을 갖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품이 페미니즘적으로 평가되어 여성미술제에 초대되기도 하는 작가들이 여성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은 공통적으로 미술계내의 ‘실질적’ 여성주의를 수용하거나 이와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현재 미술계내에서 ‘실질적’ 여성주의는 미술이론가, 전문적인 전시기획자 등이 주도하는 미술공론장, 여성주의 기획전을 통해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기획전은 작가를 선정하는 구조를 따르고 있는데, 여기에서 전시회가 표방하는 여성주의와 실제 참여하는 개별작가의 여성주의간의 거리감이 조정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그 결과 자신이 무리없이 일치시킬 수 있는 ‘실질적’ 정체성이 부재하는 개별 작가들은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억압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스스로를 고급화하여 성역화 한 현대미술의 폐쇄적 속성에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에서 미술관람인구의 대부분은 전문미술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미술계내의 ‘실질적’ 정체성은 특정 전문집단에 의해 규정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시공간의 확충 등을 통해 보다 다양한 미술관람인구가 확보된다면 ‘실질적’ 정체성과 ‘실제적’ 정체성간의 충돌로 인하여 생기는 개별 미술가들의 정체성 문제는 완화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