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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일본 잡지 『세카이(世界)』에 나타난 북한상에 관한 연구-

2016년 10월 07일 10시 17분


초록

냉전 이후 점차 심해지는 일본 진보세력의 영향력 약화와 후퇴, ‘전후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일본 진보세력이 북한에 대해 친화적으로 접근해 온 것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일본의 ‘전후민주주의’를 상징하는 『世界』라는 진보잡지를 통해서 일본의 진보세력이 과거 북한을 실제로 긍정적으로 묘사한 사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북한을 묘사하고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검토를 시도했다. 종래 일본인의 ‘韓國觀’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는 주로 대륙진출로 이어지는 明治時代의 일본인의 감성을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으로 설명하고 지정학적인 ‘타자’로 한반도가 발견됨으로써 일본의 경계가 확정되었다는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심상이 전후에서 단절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식민지가 해방된 지 오래된 후에 구종주국과 구식민지 사이에 생긴 당양하고도 새로운 형상들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담론을 생산하는 ‘서양’과 담론의 대상이 되는 ‘동양’이라는 확고부동한 이항대립을 상상함으로써 ‘서양’과 ‘동양’, 그 사회 내부에는 균열이나 갈등이 없는 동질적인 실체로 규정되고 확실히 존재할 만한 계층 간의 투쟁을 덮어씌우고 만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의 극복을 시도하면서 1970년대 북한기사의 분석을 실시했다. 『世界』지는 현재로서는 ‘朝鮮問題’ 전문잡지로 인식되고 있으나 초기에는 한반도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한반도를 강대국의 정치적 흥정이 벌어지는 지리적 공간으로만 파악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世界』지는 남북한에 대해 양가성을 지닌 태도를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일본 진보세력에 있어서 한반도는 자기애적 동일시와 공격적 동일시가 교차하는 공간으로 존재했다. 반면 이들은 북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북한에서 진행 중인 사회주의건설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1970년대 북한은 일본진보세력에게는 일본의 기존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사회변혁을 위한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유토피아적인 국가였다. 또 일본의 진보세력이 추구하는 자주독립, 자급자족, 평화주의를 실현한 사회로 제시되었기도 하였다. 한편 『世界』지는 기존의 사회주의가 내포하는 제반 문제점과 모순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체제를 기존의 사회주의 국가와는 다른 것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맑스주의를 북한의 현실에 맞게 발전시킨 주체사상에 주목함으로써 다른 사회주의국가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와 모순을 극복한 사회로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 사회주의를 ‘마오주의’와 결합시켜서 중국을 소련형 사회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와 모순을 극복한 사회로 묘사한 것과 똑같은 양상을 띤다. 이것은 어떠한 준거 틀을 설정해 놓고 그 틀에 적합한 대상을 모델로 설정하지만 그 모델이 준거 틀에 적합하지 않게 되면, 또 다시 준거 틀을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을 새로운 곳에서 발견한다는 ‘준거 틀의 신화’의 표출이었다.

1970년대 북한기사의 분석을 통해서, 북한기사는 다양한 기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진보세력은 북한을 논의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일본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담론전략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정부는 국내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世界』지가 그리는 부정적인 남한상을 활용하고 자국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남한의 민주화세력에게 『世界』지는 민주화에 대한 전망과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즉, 일본 진보세력, 북한정부, 남한민주화세력이 『世界』지라는 매체를 통해 생산된 담론을 서로의 목적에 맞게끔 전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유는 피지배자에 의해 문화적 저항의 논리로 활용될 수 있으나, 여기서는 일본 진보세력이 일본정부를 비판하는 담론이 북한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양자는 공모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구종주국인 일본이 한반도를 담론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어떠한 효과를 발생시켰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것과 동시에 담론의 대상이 된 남한과 북한 사회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고려할 때, 그 사회내부의 대립세력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생산된 담론이 담론생산자의 의도를 떠나서 국경을 초월하는 형태로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담론의 대상이 되는 ‘타자’도 담론생산자의 희생자로만 위치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1970년대 한반도 관련기사를 통해서, 『世界』지는 북한정부, 일본 진보세력, 남한 민주화세력이 국경을 넘어선 형태로 서로가 서로의 담론을 전유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1970년대 북한기사의 분석을 통해서 구종주국인 일본에서 일본의 진보세력이 생산하는 한반도 담론이 구식민지인 북한에서 북한정부에 의해 전유되고, 남한정부를 비판하는 담론은 남한에서 남한 민주화세력에 의해 전유되고 있었다는 사실, 즉 구종주국이 생산하는 담론을 구식민지가 전유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정부에 저항하는 논리로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을 밝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