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16분
초록
이 논문은 네그리의 이론을 통해, 포스트포드주의 혹은 정보화 생산체제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자본주의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대안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노동패러다임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1970년대 이후, 현대자본주의가 공장 자동화의 도입과 포스트포드주의 생산체제로 이행함에 따라, 생산 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노동사회 소멸론 혹은 노동의 종말론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노동사회 소멸론은 기술혁명으로 인해 노동의 영역이 축소되고, 잔존하는 노동마저 탈숙련화 되어, 노동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가 노동에서 벗어나, 자율적 활동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즉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사회 구성원리’로서 노동을 부정하고, 대안 ‘사회 구축전략’으로 노동이 아닌 자율적 활동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런 논의는 탈노동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탈노동패러다임은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노동이 지배화된 것에 대한 비판이자, 자본주의에 대항한 역사적 사회주의마저도 역설적으로 노동을 신성시함으로써 자본주의적 노동윤리를 계승한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탈노동패러다임은 기술투입의 계기로서 계급투쟁을 무시하고 기술결정론을 통해 단선적 노동사회 소멸을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노동이 만연화되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탈노동패러다임은 노동을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보는 도구적 노동관에 기반함으로써, 노동지배화의 원인이 노동과 자본의 적대임을 망각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에서 소외되고 억압된 노동이 자유로운 노동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알지 못한다. 즉 ‘노동 안에서의 해방’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의 변화를 설명하면서도, 탈노동패러다임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에 네그리는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을 사고할 수 있게 한다. 우선 그는 계급구성론을 통해 기술투입이 단선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에 대한 자본의 재구조화 전략으로서만 도입된다고 말함으로써, 노동사회 소멸론의 기술결정론을 비판한다. 또한 그는 투쟁주기 분석을 통해, 특히 68혁명 이후 자본의 사회에 대한 실질적 포섭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적 노동자가 출현했음을 밝힌다. 이는 사회적 공장 속에서 노동자, 청년, 학생, 주부 모두가 자본에 의해 착취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사회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이 만연화된다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먼저 전기 네그리는 노동거부-자기가치화 전략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노동계급은 노동거부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멈추고, 자본의 동력으로 활동하기를 그만두어야 하며, 자기가치화를 통해, 비노동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자기구성의 적극적인 기획으로 나아가, 노동과 자본을 단절시켜야 한다. 전기 네그리의 이러한 전략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 네그리의 전략은 탈노동패러다임처럼, 노동을 회피의 대상으로만 두고, 노동 안에서의 해방을 고려치 못하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네그리가 1980년대를 경유하면서 자본의 사회에 대한 실질적 포섭이 심화된 것으로 파악하면서, 기존 전략인 노동-거부자기가치화는 무용화되는 사태에 처한다. 왜냐하면 자본의 사회에 대한 실질적 포섭의 심화 상황에서, 노동거부를 통해 구축할 수 있는 자기가치화의 영역 즉 자본의 외부는 더 이상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런 모순을 극복할 또 다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후기 네그리는 산노동에 대해 강조하고, 구체적으로는 포스트포드주의에 따른 비물질적 노동을 분석함으로써, 노동이 협력적이고 소통적인 성격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고, 나아가 노동력이 대중지성을 소유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자유로운 노동 혹은 노동 안에서의 해방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후기 네그리는 여전히 사회적 공장론을 통해 노동사회 소멸론을 비판하면서도, 비물질적 노동을 통해, 노동거부-자기가치화 전략의 무용화를 극복하고, 탈노동패러다임과 전기 네그리가 도외시했던 노동 안에서의 해방 문제를 노동패러다임 내에 다시 정당하게 복귀시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기 네그리의 비물질적 노동론이 탈노동패러다임을 대체하고,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패러다임을 재구성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네그리는 ‘경향의 방법’을 통해 논의를 전개하는데, 후기로 올수록 그 경향을 추동시키는 계급투쟁의 상황을 경시함으로써, 하나의 완결된 자본의 사회에 대한 실질적 포섭체제와 비물질적 노동체제를 성급히 선언하고, 비물질적 노동을 통해 출현하는 주체성의 양가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또한 후기 네그리는 실질적 포섭의 과도한 현실화와 더불어, 노동 안에서의 해방론으로 기울어져, 애초 탈노동패러다임이 옳게 제기했던 문제 즉,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후기 네그리의 이론은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대한 분석을 이론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하고, 자신의 비물질적 노동론을, 맑스의 노동 안에서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이중적 틀 속에 위치지음으로써, 탈노동패러다임을 극복하고, 현대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