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15분
초록
국문 초록
재난의 사건구조에 관한 연구
: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를 중심으로 한 비교사례연구
이 논문은 2003년 2월 14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재난의 사건구조에 관한 연구이다. 기존의 재난연구가 위험사회라는 거시적 틀 내에서 한국사회의 위험의 특수성을 해명하면서 과학기술 중심의 현대 산업사회의 구조적 위험성을 밝혀낸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재난연구들은 구체적 재난의 성격과 원인을 파악하고 시간적, 공간적 변화의 역동성을 인식하는 데 많은 한계를 보여주었다. 특히 이 논문은 사건구조분석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한국사회 과거의 재난사례와 현대적 재난사례 그리고 대구지하철 화재사고의 사례비교 연구를 함으로써 재난의 유형화를 모색하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 재난의 성격변화 및 원인의 파악에 주력하고자 하였다.
첫째, 재난은 재난발생조직의 행위자와 이를 둘러싼 외부조직 및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이는 사건구조분석이라는 방법론으로 재난을 살펴본 결과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으로서 사건구조분석은 재난의 서사구조에서 사건을 정의하고 이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인과적 관계의 유무로 재조직한 후 이를 사건구조라는 논리적 그림으로 완성시켜 보여주는 분석기법이다. 사건구조분석은 재난이라고 하는 사고가 단순히 정태적이고 추상적인 위험의 모습이 아니라 역동적이며 구체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재난이 발생한 조직의 구성원, 그리고 외부조직,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제반환경 그 안에서의 정보와 자원의 상호교환과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건구조분석은 특히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건을 구성하기 때문에 시간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사건의 소요시간이라는 특징을 이끌어내어 쉽게 화석화된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재난을 하나의 과정, 연속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재난 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연구는 재난의 원인을 파악하고 재난의 성격을 추론하는 데 있어 보다 심층적인 접근에 도달하고 있다.
둘째,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는 한국의 과거 재난(단순․증폭형)과는 달리 정상사고, 고도위험기술사고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현대적 재난(복합․돌발형)이다. 재난별 사건구조비교에서 성수대교 붕괴사고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한국의 과거 재난과 달리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는 현대적 재난에 비슷한, 상호작용이 많고 소요시간이 적게 걸리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는 대구지하철의 발생원인이 오랫동안 조직내부의 위기가 숙성되고 배양된 것이라기보다 전체적인 상호작용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시스템 디자인의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는 정상사고, 고도위험기술사고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대구지하철 화재사고의 현대적 성격만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후진국적 고리가 은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는 특히 시․공간상의 불확실성에 의해 비교가 쉽지 않은 재난을 사건구조라는 비교 가능한 틀로 재조직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으로 기존의 연구가 가지는 사례연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추상적 연구가 가지는 공허함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셋째,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는 한국사회 재난의 성격이 복합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재난의 사건구조를 통하여 재난의 유형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재난의 성격을 사건간의 상호작용과 사건의 소요시간이라는 두 축을 기준으로 재난의 성격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재난은 어느 나라든지 여러 가지 스펙트럼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 실패의 유형이며 한국사회의 과거재난과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그리고 현대적 재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대구지하철 화재사고가 한국사회의 과거재난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미래 한국사회의 재난이 단순․증폭형 재난뿐만 아니라 복합․증폭형이나 복합․돌발형 재난과 같이 보다 다양한 성격과 유형을 가질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한국사회가 복합위험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이 연구는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를 한국사회 과거재난과 현대적 재난 사이에 적당히 위치시킴으로써 이를 연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두 재난의 성격 차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다양하고 상이한 위험이 공존하는 현실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조직학적 수준에서의 고찰을 통하여 이 연구는 한국사회가 열린 체계로 조직을 구성함으로써 미래 재난을 예방하여야 할 뿐 아니라 고도위험기술이 갖추어진 체계, 피할 수 없는 사고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체계에 대한 보다 면밀한 계획과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또 ‘효율’만이 강조되고 ‘안전’은 간과되는 잘못된 조직목표설정과 권위적 관료주의에 따른 폐쇄적인 체계의 인식은 체계와 관리의 불일치를 양산하고 한국사회 재난을 계속적으로 불러온 주범이었다. 이것은 부실공사와 부정부패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조직의 잘못된 풍토와 문화가 위험을 지속적으로 배양해왔다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격을 갖는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목표설정이 재조정되어야 하고 조직하부의 의견이 상부의 의사결정단계에서 고려될 수 있도록 민주적 조직, 열린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연구는 우리 사회 재난의 발생과 그 원인에 대한 기초적 사례연구이다. 한국 사회 재난의 성격은 어떠하며 우리 사회의 사회조직학적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분석하면서 이를 통해 한국사회 위험이 어떻게 재난으로 표출되는지를 궁극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그러한 목적에서 사건구조분석은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견지에서만 분석되어 온 재난을 사건의 연속이라는 경험적인 인과적 사실로 재구성하여 조직과 행위자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에서 규명하고 분석하는데 효과적인 도구였다. 재난에 대한 연구조차 위험사회라는 거시적 틀 내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인식함과 동시에 이러한 성찰성을 바탕으로 충실한 자료수집과 지식의 동원을 통하여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실천적 노력과 이론적 연구들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한국사회의 위험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끊임없는 노력들이 가시화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했던 위험과 불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과 비전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