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이 논문은 문화적 지구화가 한 사회의 전통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기 위해 카자흐스탄의 전통적인 홍차문화를 사례로 연구한 것이다. 문화적 지구화가 개별 국민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지구 문화의 동질화든 민족문화의 보존이든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제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실상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에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빠르게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개방을 진행하고 있는 나라다. 이 논문에서는 전통적인 홍차문화에 주목하고 있는데, 카자흐스탄에서 홍차는 단순히 소비되는 음료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정체성, 일상생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2, 3시간 홍차를 함께 마시는 것은 계층, 빈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대표적인 공동체 문화였으며 손님접대의 기본이었다. 또한 커다란 주전자와 사발에서 나타나는 소박함, 식지 않게 조금씩 따르며 오랫동안 즐기는 여유가 홍차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홍차문화는 비단 카자흐스탄만의 것이 아니라 구소련 전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구소련 시대에 중앙아시아의 유목 문화와 사회주의 문화는 서로 영향을 받으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는데, 홍차문화도 이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홍차가 유목민족 시절에 카자흐스탄에 전파되었으며 지금도 자신들의 홍차문화가 다른 CIS국가와 차별되는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강한 믿음에 덧붙여 독특한 전통으로서 홍차문화의 이미지는 대중매체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 강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홍차문화는 얼핏 보면 자본주의화와 문화적 지구화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립 이후 카작인의 국가가 되면서 유목민족의 전통과 이슬람 문화를 되살리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헐리웃 영화와 멕시코 TV드라마다. 외자 유치와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커피를 비롯하여 홍차문화에 위협이 될 만한 수입음료들도 점점 더 많이 들어오고 있으며 햄버거와 콜라 같은 패스트푸드가 젊은이들의 입맛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상품의 수입은 대부분 영세한 사업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아직 카자흐스탄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적은 인구와 낮은 시장성 때문에 거대 자본들은 진출을 꺼리고 있는 것이다. 홍차의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음료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가 여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홍차에 특별히 위협적이지 않은 시장 환경 덕이기도 하다.

사실 경제 발전으로 사람들의 삶이 바빠지고 구매력이 향상되었다면 홍차문화에 변화가 생길 만하지만 자원(석유) 수출에만 의지하고 제조업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소수의 부유층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매력이 낮은 저소득층에 머물러 있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모든 사람들이 일을 나눠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다면, 지금은 대부분 일자리가 없어서 시간이 남아돈다.

홍차문화는 외형상 구소련 시대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래에도 홍차문화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구매력이 낮은 대다수 저소득층에게는 홍차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으며 여전히 오랜 시간 홍차를 마실 수 있을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 그러나 그 이면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구소련 시대에는 없었던 ‘경쟁’이 등장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각박해졌고 일자리 걱정에 정신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홍차를 여전히 많이 마시긴 하지만 전통적인 여가로서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점점 낯익은 나라가 되어가는 것처럼, 홍차를 마시는 행위 역시 문화적인 특수성이 약화되고 소비행위의 의미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홍차가 다른 상품에 의해 대체되기는 힘들 것 같지만, 전통적인 홍차문화는 새로운 소비문화와 결합된 홍차문화로 거듭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