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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개항기 '몸' 담론의 의미구조와 그 변화에 관한 연구-

2016년 10월 07일 10시 12분


초록

이 논문은 한국에서 근대적인 몸 개념이 생성되는 개항기의 다양한 문헌 분석을 통해 몸 개념을 둘러싼 역동적인 담론의 공간을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적 몸 개념의 생성에서 전통적 몸 개념은 단순히 서구적 몸 개념에 의해 배제되는 단일한 연관 구조를 맺지 않는다. 본 논문에서 근대적 몸 개념이란 순수한 서구적 몸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항기 한국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변용되어 수용된 서구적 몸 개념과 이에 개입하면서 재배치된 전통적 몸 개념의 복수적이고 변증법적인 관계의 산물이다. 이후의 논의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는 다음과 같다. 이 논문에서 몸을 수식하는 서구적ㆍ근대적ㆍ과학적이라는 언표가 등가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서구적’인 몸 개념을 ‘근대적’인 몸 개념과 동일시한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구성하는 비서구적인 몸 개념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항상 창조적으로 변화하는 서구적(근대적)인 몸 개념과 항상 고유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적(보수적)인 몸 개념의 이분법이 강화된다. 또한 ‘서구적’인 몸 개념과 ‘과학적’인 몸 개념을 등치시킨다면, 이는 자연주의적 이론을 적용하여 경험적인 관찰을 해석하고 지식 체계를 조직화했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로 과학적인 성격을 지닌 전통 의학의 특징을 간과한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몸 개념은 경직되고 고착화된 개념이라기보다는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부분적인 변형을 통해 근대적인 몸 개념의 생성에 개입한다. 전통적 몸 개념에서 쓰이는 身ㆍ體ㆍ氣(質)ㆍ形(氣) 그리고 心ㆍ靈ㆍ魂 등의 언표는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같은 언표라 하더라도 상이한 의미를 지닌 전통적인 몸 개념이 새로운 서구적 몸 개념과 만나서 어떤 근대적인 몸 개념을 생성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개항기 문헌 분석을 통해 이 당시에 새로이 도입된 서구적 몸 개념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자연을 하나의 물질적 객체로 파악하는 과학적 관점의 연장에서 인간의 몸 또한 그 해부학적 모습과 생리학적 기능을 중심으로 다루는 기계론적 몸 개념, 둘째  새로운 공동체인 가족ㆍ사회ㆍ국가로 환원되는 존재로 인간을 파악하고 태어날 때의 불완전한 신체와 정신이 공동체의 부강을 위해 주조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몸 개념, 셋째 항상 죽음이라는 몸의 부정을 통해서 도달 가능한 영혼의 구원과 대립되어 현세에서 하찮게 다루어지는 종교적 몸 개념이다. 우선 기계론적 몸 개념에서 신체는 그것을 이루는 각 세부 기관과 조직들로 세분화되고, 그 각각의 세부와 그것이 수행하는 각 기능에 상응하는 정확한 언어적 표현의 설정을 통해 평면 위에서 분할 가능한 방식으로 상상된다. 이와 더불어 원소의 결정체인 신체는 종종 등화나 기계에 비유되면서 화학적인 연소 작용으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담론의 한 대상이 된다. 다음으로 공동체에 속한 개인의 불완전한 심신이 주조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몸 개념에서 주된 담론의 대상은 크게 보면 청년ㆍ어머니ㆍ아동의 몸이다. 위력적 평화의 시대라는 인식하에서 청년의 몸은 ‘강건한 신체’와 ‘단련된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국민의 원기를 결정하는 체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반면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는 타고난 온유한 본성과 임신과 육아를 위해 주조되어야 하는, 그래서 남성보다 더 생물학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건강한 신체를 지닌 존재로 상정된다. 아동의 몸은 심신의 미결정성, 즉 아직 선악사정이 형성되지 않은 깨끗한 정신과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연약한 신체를 가진 존재이며, 이 미결정된 심신은 위생학과 강력하게 결합한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에 의해 주조가능한 존재로 구성된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몸 개념은 특히 그리스도교의 도입으로 정착한 몸 개념으로서 이는 죽음이라는 육신의 부정을 통해서만 내세에서 영혼의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교환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죽음은 천국에서의 구원을 얻기 위한 영광스러운 단계로 여겨지며, 육신의 덧없음과 영혼의 고귀함이라는 이분법이 심어진다. 세 가지 새로운 서구적 몸 개념에서 개인의 몸은 예전의 가족과 친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에 귀속된다. 기계론적 몸 개념에서 개인의 몸은 물질적 객체로 대상화되는 자연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귀속되고, 도덕적 몸 개념에서는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회와 국가의 성원으로, 그리고 종교적 몸 개념에서는 영혼의 구원을 보장해줄 수 하나님 나라에게로 각각 새로이 귀속된다.  

  개항기 근대적 몸 개념의 생성을 살펴보기 위해서 위에서 언급한 기계론적ㆍ도덕적ㆍ종교적 몸 개념이 전통적 몸 개념과 어떤 연관 구조를 맺고 있는가를 분석해야 한다. 우선 두 개념 사이의 비교를 위해 한의학의 몸 개념 중에서 장상학설, 기화학설, 마음의 수양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말하자면 이 각각은 폐ㆍ비장ㆍ간ㆍ신장과 같은 장상은 실체론적 개념이 아니라 기능론적 개념이어서 기의 흐름에 따라 신체의 기관들이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는 것, 수곡의 기가 정련되고 변형되는 과정에서 유형의 생리적 기능과 무형의 정신적 기능이 동일한 기의 변형 양태를 통해 통합적으로 설명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인체의 생리적 과정을 통해 유형의 것으로부터 무형의 기능이 발현될 때 생기는 성명을 잘 배양하기 위해 매 순간 자기 마음을 관찰하고 항상 마음을 단속하는 노력을 중요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전통적인 몸 개념은 서구적 몸 개념과 상이한 연관 구조를 맺는다. 첫째 기계론적 몸 개념은 합리성이라는 과학적 요건과 사회의 의료화라는 제도적 실천 속에서 몸에 대한 전통적 개념, 특히 기능론적인 장기학설과 대부분의 기화학설을 배제시킨다. 신체의 가시적인 해부와 그에 상응하는 언어적 표현을 통해 과학성을 확보한 기계론적 몸 개념은 하나의 계열로 신체의 기관을 이해하는 입체적인 한의학적 개념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비판할 수 있었고, 외과적인 질병 치료에서 효율성을 보이고 나아가 신체 규율 모델의 기초를 제공함으로써 전통적인 몸 개념을 배제시켜 나갔다. 둘째 도덕적 몸 개념은 민족 구성원 각자의 강건한 신체를 기르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을 내면화하기 위해 전통적 몸 개념과 결합하여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여기서 물리적으로 신체를 조련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서구적인 몸 개념은 항상 자기 마음을 단속하여 애국정신과 인내력을 충만케 하는 전통적인 마음의 수양 개념을 선택적으로 강화시킨다. 셋째 기독교계 진영에서 영어를 최대한 일상어에 가까운 한국어로 번역하려는 언어정책 때문에 전통적인 의미에서 쓰이는 몸ㆍ마음ㆍ기운 등의 언표들이 도입되면서, 기계론적 몸 개념과 부정적 몸 개념이 가정하는 신체/정신 이분법을 넘어서는 혼종된 의미영역을 확보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분할 가능하고 연소 작용을 통해 생명이 유지되는 기계론적 몸 개념을 말하고 있지만, 상이한 언어적 표현으로 인해서 기운이 흐르는 몸, 말하자면 신체의 각 기관을 통해 탁한 기운과 맑은 기운을 순환시키는 몸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물질성과 초월성을 연관시켜 이해하는 전통적 의미의 관성으로 인해서 초라한 육신과 고귀한 영혼의 이분법을 초과하는 신령한 몸의 모습이 개입한다.

  새로이 도입된 서구적 신체관이 전통적 신체관을 별 무리 없이 배제시킨다는 이행론적 시각만으로는 이 시기 역동적인 담론의 공간을 충분히 조망할 수 없다. 개항기 몸 담론의 장은 한편으로는 서구적인 몸 개념이 전통적인 몸 개념을 배제시키고 주변부화하는 과정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변형되어 재배치된 전통적 몸 개념의 개입으로 인해 복합적인 근대적 몸 개념이 생성되는 과정이다. 서구적 몸 개념과 전통적 몸 개념은 모두 그 안에 상이한 의미를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현재를 틀 짓고 있는 몸 개념을 살펴보기 위해서 서구적 몸 개념의 어떤 요소가 전통적 몸 개념의 어떤 요소를 배제하고 활용하고 타협하면서 개항기에 근대적인 몸 개념을 생성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세심한 눈으로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