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0시 03분
이 논문은 1998년 금모으기 운동과 1907-1908년의 국채보상운동에 나타난 상징적 통합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두 운동은 모두 국가위기라는 특정한 시기에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인 한 개인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운명을 국가 공동체와 일치시켜 인식하고 이에 기반한 집합적 실천을 이루어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논문은 무엇이 이러한 국가 공동체 중심의 상징적 통합을 가능하게 했는지 그 기제와 과정을 규명하고자했다. 즉 각 운동에서 개별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위기인식은 무엇이었으며,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직접적인 실천행위의 필요성은 어떻게 인식되었고, 개인의 실천행위는 어떻게 의미부여 되어 집합의식을 강화했는지 밝히고자 했다.
첫째, 1998년의 금모으기 운동은 IMF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IMF경제위기의 실제 발생원인과 전개과정에서 한국경제구조의 내부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모으기 운동에서 IMF경제위기는 침략적 외부의 위협에 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위기의 원인과 책임규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급한 위기극복만이 강조되었다. 이는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판단의 우선기준을 경제영역에 두고 현실을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시대로 규정하는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맥락에서 IMF경제위기는 이등국가로 낙오한 국가적 치욕의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금모으기 운동의 기본 의미구조는 ‘우리/외세’의 의미대립에 기초하며, IMF경제위기는 ‘침략적 외부가 국가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규정되었다. 이는 ‘경제주권의 상실’, ‘제2의 국치일’ 등의 표현을 통해 과거 식민지의 역사적 경험을 환기시켰고, 이를 통해 고조된 위기인식은 금모으기 운동의 보편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확보하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개인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금붙이와 기념품을 내놓는 ‘금모으기’라는 실천행위는 운동기간 동안 그에 얽힌 개인들 하나하나의 사연을 강조함으로써 일종의 국민의례로 기능했으며 금모으기 운동의 도덕적 의미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둘째,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에는 국가위기에 대한 전치된 인식이 두드러진다. 을사조약 체결이후 국채문제는 일본의 식민지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으며 실제 국가위기의 원인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이었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에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지 않으며 위기의 원인이 국가내부의 문제로 귀속된다. 이는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개화자강론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의미구조에서 대립항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계몽되지 않은 국민들이었으며, 개화자강을 위한 국민의 계몽이 국가위기의 극복방안으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에는 국가와 국민이 공동 운명체이며, 애국심을 가진 국민만이 진정한 국민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국채보상운동에 있어 특징적인 것은 의미구조가 상이한 텍스트들이 혼재해있다는 점이다. 전근대적인 충군애국 논리에 입각한 텍스트와 근대적인 ‘개인/국가’의 의미대립에 기초하는 텍스트가 함께 나타난다. 이와 함께 국채보상운동에는 하류계층, 여성, 아동 등 당시 국가 공동체에서 주변화된 주체들의 실천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국가 구성원의 위계구조를 넘어 애국적 행위를 통해 ‘국민’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국가내부 구성원의 통합을 위한 상이한 논리가 혼재해있다는 점과 ‘국민’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은 국채보상운동이 전근대적 왕조 중심의 신민에서 근대적 정치 공동체의 국민으로 집합적 정체성이 변화해가는 과정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두 운동은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맥락의 상이함으로 인해 상징통합기제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금모으기 운동에 있어 통합의 핵심기제가 외부의 위협이라는 대립항의 설정에 있는 반면, 국채보상운동은 내부의 국민을 직접 설득하고 통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두 운동의 상징적 통합과정은 모두 국가 공동체의 경계가 재설정되고 국가 공동체의 의미가 재정의되고 있다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 집합적 실천은 국가 공동체가 새롭게 변화하는 증거인 것이다. 따라서 두 운동은 공히 국민을 주체로 하는 집단적 서사, 일종의 국민서사로 간주할 수 있다. 국민서사로서 두 운동은 모두 국민을 도덕화된 주체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한 강한 도덕적 비판이 불참자에게 가해지고 있다. 일시적인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시화하는 것은 집합주체의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이며 이를 통해 국가는 위기극복 이후 새로운 국가 공동체의 상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국가위기라는 특정한 상황의 상징통합기제를 규명하고자 했다.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의미론적 자원(資源)이 가지는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이 논문이 집합의식의 형성기제와 과정을 규명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여겨진다. 더불어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상징적 통합과정을 분석함에 있어 일관되게 역사적이고 이데올로기적 맥락 속에서 살피고자했다. 이는 상징체계와 의식(意識)의 장(場)을 주어진 시기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해하고자하는 것이며, 상징체계와 현실의 관계를 설명하고자하는 노력이기도하다. 사회학적 대상으로서 집합의식의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는 그 중요성에 비추어 특히 경험적이고 분석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상징체계를 분석할 수 있는 적합한 개념틀의 개발, 상징통합과정과 현실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연구의 축적은 이 논문의 연구성과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