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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997년 이후 성표현물 검열 논쟁과 여성주의의 딜레마-

2016년 10월 07일 10시 00분


 

초록

1997년 무렵, 한국사회는 표현물에 대한 검열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쟁이 일었다. 한국사회는 분단체제와 그로 인한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미 1950년대부터 국가에 의해 표현물이 검열된 수많은 전례들을 가지고 있지만 1997년 이후 검열은 검열의 대상과 주체에 있어 거대한 변화를 겪게 되는 시점이다.

이 논문은 1997년을 기점으로 하여 나타난 검열의 성격 변화와 함께 검열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논쟁,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주의 담론이 소외되는 상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자가 여성주의 담론의 개입과 소외에 주목한 것은 1997년을 중심으로 하여 검열의 주 대상이 이념적 표현물에서 성표현물로 바뀐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사회에서 맹위를 떨치던 이념적 논쟁이 종식에 다르자 국가는 검열의 대상을 성표현물로 옮겨갔다. 뿐만 아니라 성표현물이 문제가 되자 과거에는 국가 대 창작자라는 이자적 구도로만 펼쳐지던 검열 논쟁에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에 대한 엄숙주의와 도덕주의를 주장하는 기독교 단체와 표현의 자유와 시민의 문화적 향수권을 주장하는 문화 단체는 논쟁의 정점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논쟁은 이자적 구도에서 국가-창작자-시민사회라는 다자적 구도를 취하게 되었고 논쟁의 쟁점은 ‘예술과 외설의 문제’와 ‘청소년보호론’으로 모아졌다.

이 논문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전제로 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설명해보고자 하였다.

첫째, 1997년 이후 전개된 성표현물 검열 논쟁에 여성주의자들은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가? 연구자는 최근 일어난 유사한 사건들 중 가장 논쟁이 활발했던 영화 <거짓말>과 박진영 음반<게임>을 통해 여성주의자들이 어떻게 이 논쟁에 개입하는지를 당시 발표된 성명서와 토론회 내용, 신문기사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여성주의자들은 <거짓말>의 경우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하여 입장 표명을 하였으나 그 내용은 여성주의적 입장이라기보다 청소년 보호론을 옹호하거나 성도덕의 타락을 우려하는 도덕주의자들과 차별점을 갖지 못하였다. 음반 <게임>의 경우 여성주의자들은 일관되게 침묵하였다. 다만 한 여성 잡지의 편집장만이 검열 자체와 표현물의 내용 모두를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였지만 이는 곧 양비론으로 취급되어 논의 속에서 소외되었다. 이 논문은 바로 여성주의 담론이 이처럼 양비론으로 취급되어 소외되는 상황을 주목하였고, 이를 곧 여성주의의 딜레마적 상황으로 보았던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성표현물 검열 논쟁 속에서 여성주의 담론은 왜 주변화되고 있는가? 이 논문은 여성주의가 이 문제에 딜레마적 상황에 처하게 되어 발언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한국여성운동의 독자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지금까지 한국의 여성운동은 여성의 성을 욕망과 쾌락의 문제라기보다 매매춘, 포르노그라피, 성폭력 등의 쟁점들과 관련하여서만 표명하였다. 그 결과 한국 여성운동은 국가에게 여성의 성의 보호를 요청하는 보호주의 전략을 택해왔다. 2) 근대 이후 이어져 온 한국사회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이로 인한 국가의 사상검열이 1990년대 후반까지도 검열의 문제를 사상통제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왔다. 창작자들은 성표현물을 정치적 표현물의 연장선상에 놓고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권력에 대한 비판적 은유로서 성적 장치들을 이용하였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은 국가에 의한 성표현물 검열을 1980년대의 정치적 검열의 연장선상에 놓음으로써 여성주의자들이 텍스트의 적실성에 대해 판단하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연대해야할 사안으로 표현의 자유 문제를 위치시켜왔다. 3)1997년 이후 청소년보호 담론이 크게 확산되었다. 특히 ‘원조교제’의 등장과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성 청소년의 성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이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요청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 단체들은 청소년 성 보호 담론, 나아가 청소년 보호 담론에 동의하게 되었다.

위의 세가지 요인들을 살펴보았을 때 여성주의는 진보적 단체들과 연대하여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하는 당위성, 원조교제 등 1997년 이후 피해자로서 부각된 여성 청소년의 성에 대한 보호, 음란물이 갖는 현실 모방 효과, 여성운동의 독자적 맥락이 노정해온 여성의 성에 대한 보호주의적 입장 등이 맞물리면서 딜레마적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즉, 표현의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기에는 현실, 혹은 포르노그라피 속에서 착취당하는 구체적인 여성의 경험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표현물 속에서 재현된 왜곡된 여성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은 결국 검열을 옹호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이 이 성표현물 검열 논쟁 속에서 여성주의가 결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현 실태를 만든 것이다.

성표현물에 대한 검열과 이에 대한 시민사회간의 공방이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앞으로 이와 유사한 논쟁에서 여성주의자들이 어떠한 실천적 개입을 할 수 있을지를 발견하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청소년보호담론과 표현의 자유 담론이 배타적 가치로 설정되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주의자들은 이 양분적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여성주의자들이 이 성표현물 검열 문제에 있어서 여성주의에 입각한 담론을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 논문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진척되어야 하는 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