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09시 59분
초록
권력은 사회학의 핵심 주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의들은 다음 두 가지 면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 대부분 권력은 거시구조(국가, 계급)에 의해 소유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고찰하는데 한계가 있다. 둘째, 행위자의 자율성을 고려하는데 한계를 지녀, 행위자가 권력구조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본 연구에서는 행위자의 형성 메커니즘과 행위자의 자율성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권력 개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습속화된 권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권력은 습속화되어 행위자를 조건 짓지만, 동시에 체화된 습속은 행위자의 성찰성을 근거 짓는다.
고프만(E. Goffman)과 엘리아스(N. Elias)는 습속과 행위자의 성찰성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 연구는 그들의 공통점을 권력 개념과 행위자의 성찰성을 구성하는 자원으로 활용하였다.
고전사회학에서 허버트 스펜서(H. Spencer)는 이미 사회통제 기제로서의 습속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파슨스(T. Parsons) 이후로 습속 문제는 사회학에서 사라졌다. 부르디외(P. Bourdieu)와 푸코(M. Foucault)는 사회 이론에서 습속의 중요성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부르디외와 푸코는 개인들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을 다루지 않았으며, 주체의 성찰성과 자율성이라는 면에서 난점을 가지고 있다. 고프만과 엘리아스의 연구는 그 이전에 행해졌지만, 여전히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생산적인 자원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고프만과 엘리아스를 비교하여 세 가지 논제를 제시하였다.
첫째, 고프만과 엘리아스에 의해 제시된 근현대 사회의 습속과 상호작용을 다루었다. 고프만은 ‘상호작용 질서’라는 이론적 기획 하에 현대 사회의 습속을 다루었다. 그는 연극론적 상호작용과 상호작용의 의례적 성격을 탐구하였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숭배의 의례는 다양한 상호작용 양식에서 작동된다. 고프만은 이를 ‘존경의 민주화’라고 불렀다. 고프만에게 이러한 의례들은 언제나 깨어지기 쉬우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엘리아스는 궁정사회에서 드러나는 상호작용을 탐구하였다. 근대적 인간관계는 ‘외적 강제의 내면화’를 통해 계산 및 감정통제의 형태로 작동한다. 근대사회에서 이러한 ‘궁정적 합리성’은 여전히 현대 관료조직의 기저에 작동하며, 단지 사적 영역으로 숨겨질 뿐이다. 이러한 엘리아스의 논의는 고프만에 의해 제시된 근대 조직들에서의 연극론적 상호작용과 일치한다.
둘째, 이러한 근대적 습속과 상호작용은 권력 개념에 토대하고 있다. 이를 ‘습속화된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고프만은 규칙과 규범 및 정상성/비정상성을 사회적 관계의 맥락에서 보았다. 정신병원과 오점자(汚點者)에 관한 그의 연구를 통해 ‘규범화시키는 권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정신병원과 같은 총체적 기관은 도덕적 기제를 통해 수용자의 자아를 재구성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재규정한다. 고프만은 정신질환을 사회적 상호작용 내에서의 상황적 부적합성이라는 관점에서 규정하였다. 현대사회에서 상호작용 참여자는 ‘비상관성 규칙’에 따라 중립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한다. 만약 이러한 규칙이 깨어지면, 사회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할 수 있다. 엘리아스는 권력균형이 일시적으로 고정된 인간관계망인 ‘결합태’ 개념을 제시하였다. 결합태는 습속과 매너를 형성한다. 엘리아스에게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관계이며, 권력은 모든 인간관계의 구조적 속성이다. 권력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며, 상호의존적으로 작동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근대 사회의 발달에 따라 계급 간의 기능적 분업과 기능적 상호의존성이 강화되면서, 모든 계급 구성원들은 고도의 감정 및 행동 통제 메커니즘을 발전시키게 된다.
셋째, 이러한 ‘습속화된 권력’은 행위자의 자율성과 성찰성을 위한 근거가 된다. 성찰성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의 맥락에서 규정된다. 고프만에게 자아는 상호작용 과정의 산물이다. 자아는 주어진 상황에서 ‘상황정의’를 하고, 그에 따라 연기를 수행한다. 고프만은 자아의 표현적 측면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사람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겉으로는 순응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일탈적인 경우를 포착했다. ‘역할거리’는 자아가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차적 조정, 상황정의, 틀 개념 등은 자아 정체성이 매우 유동적이며 따라서 자아는 주어진 해석적 틀을 변경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프만이 제시하는 행위자는 앎의 능력이 있는 행위자이며, 일상에서 그/그녀 자신과 그/그녀의 신체를 감시한다. 엘리아스에게 성찰적 자아는 ‘외적 통제의 내면화’에 따른 역사적으로 발달되는 성찰성에 근거한다. 사회는 성찰성을 구성하고, 성찰성은 사회 속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근대적 인간 주체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근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독특한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궁정사회에서 시민사회에 이르면서, 개인의 행동을 조율하고 장기적 관점을 가져야할 필요성이 증가했고, 이는 전 계급에게 확산되었다. 현대사회의 ‘개인화’와 ‘비형식화’는 성찰성이 증대하는 과정이다. 개인화는 개인의 결정가능 범위를 확대하며, 비형식화는 행동과 감정 통제의 이완처럼 보이지만 고정된 행동코드가 사라지고 더욱 정교한 자기규제를 의미한다. 고프만과 엘리아스에게 있어, 권력에 대한 저항은 권력관계 및 권력의 도식에 저항하는 것으로 개념화된다. 고프만은 상황적 부적합성 창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규정하는 권력 도식에 저항하는 행위자를 제시하였다. 엘리아스는 저항은 권력관계의 경직화가 강화되는 시점에 가능하며, 사회학은 성찰적 지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권력관계에 개입할 수 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