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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990년대 이후 '마당운동'과 재일한국·조선인의 아이덴티티: '히가시구조마당'을 중심으로-

2016년 10월 07일 09시 59분


 

초록

현재 재일한국■조선인(이하 ‘재일’)사회는 2세에서 3세로 세대의 이행기에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민사회와는 달리, 현시점에서도 일본에 쉽게 정착할 수 없고 아이덴티티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최대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것은, 근대국가가 출현한 이래 민족적 아이덴티티가 개인의 아이덴티티의 중심부를 점거하게 된 것과, 조선을 ‘부’의 이미지로 인식하게 하는 식민지주의적 시각이 잔존한다는 것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재일’은 자신의 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런 한편, 최근에 들어 역으로 ‘재일’의 아이덴티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능동적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 중 한 예가 필자가 ‘마당운동’이라고 명명한 것인데, 그것은 “시민연대를 목적으로 한 ‘재일’의 민족축제”이다. 공공장소에서 개최하는 이러한 축제는 사회에 무언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 논문은, ‘재일’의 아이덴티티에 관련해, ‘히가시쿠조 마당’의 사례연구를 통해 ‘재일’의 민족축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밝히고자 한다.

  ‘재일’의 민족축제는 1980년대 오사카에서 시작됐으며, 1990년대에 들어 ‘마당’이라는 행사가 비교적 ‘재일’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그 사회적 배경으로 90년대의 일본사회와 ‘재일’ 문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1) 일본이 다민족■多国籍化하는 가운데 행정부가 국내 외국인 대책을 취하게 됐다. 2) 한편, ‘외국인’으로서의 ‘재일’은 해마다 감소해 역으로 일본국적 ‘재일’이 증가하고 있다. 3) 대부분의 ‘재일’ 자녀는 일본학교에 다니고 있어 그에 따라 민족교육의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 ‘재일’ 아이덴티티 문제에 관해서 4) 韓国■朝鮮籍 ‘재일’의 주체성문제가 큰 이슈로 대두했다. 5) 80년대에 ‘재일’ 운동가들 중에서 국적의 장벽을 넘어 ‘주민’으로서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지방자치체도 그들을 지역의 시민으로서 간주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90년대는 이러한 분위기가 강화된 시기였다. 그것과 동시에 6) 복합적 아이덴티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배경에 시작한 마당운동은, 조선문화의 계승과 민족적 아이덴티티의 형성, ‘재일’의 단결, 일본인과의 교류라는 공통적 목적을 갖고 있다. 마당운동은 본래 ‘재일’의 축제로서 시작했으나, 90년대 이후는 그것보다 일본인과의 공생에 중점을 두게 됐고, 나아가 다문화의 축제로 이행해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90년대 이후 마당운동의 확산은 일본사회를 강타한 국제화의 물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당운동은 “多文化共生”이라는 지방자치체의 주요과제와 맞물려 힘을 얻게 됨과 동시에 ‘마당’측도 이 슬로건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일본에서 일정한 위치를 확보하게 됐다.

  마당운동은 기존의 다양한 ‘재일’ 관련활동을 통합해 보다 큰 호소력을 획득함으로써 ‘재일’을 현재화하는 데 공헌한다. 그리고 이는 ‘재일’에 대해서는 대항적 민족주의부터의 탈각을 의미한다.

  본고는 ‘히가시쿠조 마당’에 주목했다. 이 특색은 ‘지역의 축제’를 강조하는 데에 있다. 그것은 東九条가 단지 ‘재일’문제뿐 아니라, 피차별부락과의 갈등, 고령화문제 등 복합적이고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어 그러한 지역의 문제들을 축제에 반영시킨 결과였다. 또한 ‘히가시쿠조 마당’은 민족을 초월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하며,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너무나 욕심이 많은 축제이기에 그 취지를 모두 동시에 실현하는 데 무리가 없지 않아 보인다.

  현시점에서 ‘히가시쿠조 마당’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다. 축제의 열광이 주체간에 지역공동체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리고 축제는 일본인이 ‘재일’과 유기적인 만남을 통해 그때까지 특별히 관심이 없었던 ‘재일’의 문제에 대해 알게 될 기회가 되어 있다. 또한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지역의 학교와 유기적인 유대가 형성되기는 했지만 그밖에 명확한 변화는 찾을 수 없는 반면, 東九条 외부에서 보다 평가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점에서 ‘히가시쿠조 마당’이 東九条를 대표하는 존재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마당운동은 현재 다음과 같은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多文化의 축제는 마당운동의 무기인 오락성을 높여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으로만 제한 될 경우 차별철폐, 아이덴티티의 형성이라는 원래 문제의식이 애매해질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마이노리티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한 축제가 단순한 외국문화 소개의 축제로 흡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당운동은 ‘재일’을 현재화시키는 데 공헌하지만, ‘재일’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아이러닉하게도 다양화하고 혼성된 ‘재일’의 현실과 괴리되고 만다. 아울러 지금까지 마당운동은 ‘재일’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기 위해 조선전통문화에 크게 의지해 온 측면이 있다. 전통문화를 회복시켜 계승하는 것은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위한 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방식이 ‘마당’의 전형이 되어버린다면, 보는 사람들에게 마치 ‘재일’이 모두 장고를 치며 조선어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선입견을 갖게 할 위험도 있다. ‘재일’의 삶이 다양화된 오늘날에 이 과제를 극복할 기회를 놓치면, ‘마당’ 최대의 에너지인 주체들의 정열과 뒤를 이어갈 후계자를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