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09시 57분
초록
이 논문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정치와 그 과정에서 구성된 주체위치의 성별화에 관한 연구이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실천양식이 운동의 성격 및 저항자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끼친 심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사회과학 연구들은 이에 대한 분석을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또한 드물게 운동의 상징적 차원에 주목하는 연구들도 그 성맹적 관점으로 인하여 상징정치의 성별화된 차원을 포착해내지 못했다. 이 논문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정치과정에서 구성된 주체위치를 성별에 민감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상징적 동원의 성공과 실패, 운동참가자들의 정체성 형성을 이와 관련지음으로써, 상징정치와 젠더정치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정치적 장의 역동적 윤곽을 그려보고자 했다.
첫째, 민주화 운동의 상징정치는 신군부의 국가폭력과 이에 항거하는 저항형 자살의 의미를 둘러싼 치열한 상징투쟁으로부터 출현하였다. 식민지 시기로부터 상속받은 상징적 유산은 이러한 상징투쟁의 공통쟁점을 만들어냈다. 우선 정치적 가상에서 ‘민족공동체’가 차지하는 헤게모니적 지위로 인하여 공동체의 상상적 경계의 문제,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는 ‘누가 민족의 성원이고 누가 민족의 적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논쟁되었다. 또한 정치적 카리스마를 둘러싼 경쟁은 ‘허약하고 위태로운 민족체를 구원할 주체가 강력한 아버지인가, 새롭게 부상하는 아들인가’라는 식의 가족적 은유를 통해 표현되었다. 그 구체적 양상을 살펴보면, 지배세력은 ‘불순분자화’와 ‘(우연한) 희생자화’를 통해 저항세력을 민족공동체의 상상적 경계 바깥으로 추방한다. 국가폭력의 행사는 민족의 적에 대한 ‘상징적 아버지’의 적합한 선도, 혹은 처벌이라 주장되었다. 반면 저항세력은 ‘보편화’를 통해 저항세력을 민족공동체의 상상적 경계 내부로 포섭하고자 시도했음은 물론, ‘영웅화’를 통해 그들이 민족공동체의 정당한 주권자이자 폭압적인 ‘상징적 아버지’를 대신할 ‘조국의 아들’임을 주장하고자 했다. ‘보편화’와 ‘영웅화’의 결합도가 가장 높을 때 저항세력은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가장 대중화된 형태로 상징적 동원을 이뤄낼 수 있었다.
둘째, 민주화 운동세력의 상징정치 속에서 세 가지 중심적인 주체위치가 구성․부각되었다. 각각은 ‘열사’, ‘전사’, ‘어머니’였다. ‘열사’는 희생자로서 여겨지기보다는 ‘상징적 아버지’로부터 그 정치적 카리스마를 탈취하고 민족공동체의 상상적 경계를 재설정하는 영웅으로 표상되었다. ‘열사’라는 호칭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의 죽음을 불사한 저항은 반민족적인 세력에 저항하는 투쟁으로 여겨졌다. 한편 ‘전사’는 죽은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투쟁을 결의하는 자로, 열사와 함께 새로운 조국의 아들로 호명되었다. 대항폭력의 동원 및 재현질서에서 ‘남성화’가 가져오는 이점에 힘입어 이들 ‘열사-전사’는 남성 주체로 재현되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을 상실한 고통과 더불어 폭압적 지배하에 있는 조국의 고통을 표상하는 주체로, 다른 한편으로 아들과 함께 정권의 비도덕성과 폭력성에 저항하는 주체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주체위치들이 가족적 은유 속에서 ‘성별화’되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족적 은유는 대중들이 권력의 작동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과 맞물리면서도 기존 지배의 부정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강력한 상징적 동원의 핵심적 자원이 되어주었다. 한편 ‘젠더’는 정치적 주체생산에 구성적․내재적으로 개입할 뿐만 아니라, 상징정치의 효과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들’ 표상의 부각이다. 정치적 장에서 헤게모니적인 남성성은 ‘아버지’가 아닌 함께 투쟁하는 ‘아들들’과의 연관 속에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정치의 역동적 전개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주체의 남성중심성은 유지되었다. 정치적 카리스마를 보유했던 남성화된 형제들의 표상과 달리 ‘여성성’은 적합한 남성주체를 호출하는 허약하고 고통받는 사회체 및 ‘어머니’ 표상과의 연관 속에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적 은유 속에서 ‘어머니’는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주체로 부각되었으며 ‘딸’의 자리는 상징적으로 부재했다. 우리는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주체위치들이 상징적 동원에 끼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민주화 운동이 구사한 상징정치 속에서 주체위치들이 성별화되었던 방식, 그 속에서 젠더가 새로이 구성되었던 방식은 어떤 균열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장 속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겪게 되는 곤란과 균열의 성격은 매우 상이한 것이었다. 우선 ‘열사-전사’를 중심으로 강력한 상징적 동원을 이끌었던 ''남성성''의 재현양식은, 87년 이후 91년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상징적 동원의 해체와 직접적으로 결부된다. 6월항쟁 이후의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 속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참혹한 죽음들이 불러일으키는 해석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의거해, 지배세력은 ‘열사’의 재현을 ‘숭고함’의 지위에서 병리적인 ‘추악함’의 지위로 끌어내렸다. 또한 대항폭력과 연루된 ‘전사’의 재현 역시 공동체를 새로이 정초하는 신성한 폭력에서 공동체를 위협하는 사회소요세력의 그것으로 격하되었다. 특히 ‘상징적 아버지’의 권위를 앞세운 지배세력은 폭도와 패륜적 행위를 연결시킴으로써 이들의 정당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여성성’의 재현은 상징적 동원의 해체 과정에서 가시적인 균열지점으로 부상하지 못했다. 지배세력과 저항세력의 상징정치는 공히 ‘여성성’을 ‘정치의 타자’의 자리에 남겨두는 데 공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열은 담화의 표면적 차원이 아니라, 여성행위자가 정치적 행위성을 획득하고 정치적 주체로서 가시화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숨겨진 차원, 즉 자기-재현의 위기 차원에서 발생하였다. ‘여성성’을 정치의 타자로 놓는 방식은 첫째, 비정치적,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적이라는 오명을 ‘여성성’과 연결시키는 방식, 둘째, ‘여성성’을 희생자의 자리에 한정하는 방식, 셋째, ‘투쟁하는 어머니’들의 정치적 행위성을 생물학적 모성이나 도덕적 동기에만 입각한 것으로 한정하는 방식 등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의 경우 정치적 주체와 남성성의 연결이 더욱 특권화되는 가운데, 여성들은 스스로 남성화 전략을 택해야만 했다. ‘투쟁하는 어머니’의 경우는 여성화된 사적 공간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장으로의 진입이라는 의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세력의 담론은 이들을 아들의 보조자로만 한정했다. 공/사 이분법을 넘어선 ‘정치’ 자체의 혁신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연구는 지나간 역사에 대한 사후적 정리 및 평가를 넘어서는 현재적 의의를 갖는다. 소위 ‘80년대’는 현재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기 위해 끊임없이 소환하고 찬찬히 곱씹어야만 하는 우리사회의 역사적 지반이기 때문이다. ‘신화화’ 혹은 ‘청산’이라는 양극을 넘어서는 어떤 섬세한 개념적 촉수를 통해 이 시기를 탐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한국사회학이 당면한 이론적 과제를 이룬다. 특히 기억의 남성중심성이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징정치와 젠더정치의 분리불가능한 얽힘을 분석하는 것은, 상징적 장의 표면에서 배제되어 있는 다른 역사, 다른 기억에 주목하게 만드는 첫 걸음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사회의 상징정치와 젠더정치의 양상을 포착할 수 있는 적합한 개념틀의 개발, 담론적 표층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주체의 행위성에 관한 질적 연구들의 축적은 이 논문의 연구성과를 한층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