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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벤처기업 인증제도의 확산: 제도의 확산에 미치는 불확실성과 연결망자원의 효과-

2016년 10월 07일 09시 57분


 

초록

이 글은 1997년의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벤처기업의 확산을 매개한 벤처기업 인증제도에 대한 경제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한국에서 벤처기업의 급격한 확산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벤처기업 인증제도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벤처기업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벤처기업이라는 점까지 공식적으로 승인해준다는 점에서 시장에 대한 제도적 개입의 전형적인 사례를 제공해준다.

벤처기업 인증을 획득한 경우 기업은 다양한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벤처기업 인증을 획득한 기업에게 주어지는 실제적인 제도적 지원이다. 그러나 정부에 의한 인증은 직접적인 정책적 지원 외에도 보다 중요한 또 다른 혜택을 기업에게 제공한다. 그것은 공식적인 제도적 승인을 획득했다는 사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장에서의 평판의 향상이다. 시장에서 평판이 높은 기업은 시장 상황의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서 거래를 성사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도의 확산을 다루는 기존의 주된 이론인 신제도주의 조직사회학은 조직이 외부에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제도적 환경에 순응함으로써 제도가 확산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직의 확산을 다루는 신제도주의 이론은 조직이 제도를 수용하게 되는 동기를 고려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외부 환경에의 순응이라는 수동적인 형태로 파악하여 제도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측면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조직이 제도적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의 벤처기업이 확산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한국에서 벤처기업 인증제도가 실시된 시기가 1997년 말의 IMF 외환위기를 전후한 시기, 즉 한국의 경제적 여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때였다는 점이다. 시장을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제도적 환경이 존재하고 기업들이 이에 순응함으로써 제도가 확산된다는 주장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시장제도가 정착된 서구의 경우에는 적절한 것이나,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경우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가진다. 특히 한국은 최근 거시적 수준에서 국가 주도로부터 시장주도의 시장경쟁의 조정양식으로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제도적 틀이 미처 형성되기도 전에 외환위기에 직면하여 외부로부터 강압된 구조조정을 경험하였다. 따라서 제도가 확산되는 한국적 맥락은 예측가능성이 아니라 급격한 변동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을 그 특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시장 환경이 불확실한 경우 정부로부터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은 해당 기업이 건실한 기업이라는 점을 다른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신호로써 작용하며, 이들 간의 거래관계가 형성되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제도적 신뢰를 마련해 준다. 따라서 벤처기업 인증제도와 같은 제도적 승인을 받고자 하는 동기는 기업이 직면하는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기업의 내적인 특징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사정이 어려운 기업일수록 외부환경의 변화에 보다 취약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따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제도적 승인을 받고자 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둘째는 한국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던 기존의 관행을 대신할 새로운 제도들이 정착하지 못한 혼란한 상황에 기업이 공식적인 절차를 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비공식적인 자원이 한국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기업을 둘러싼 경제적 여건이 불안정할 경우, 사정이 어려운 기업일수록 인증을 받고자 하는 동기는 더욱 클 것이나, 실제로 이를 획득할 수 있는 능력 면에서는 보다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인증절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경로가 존재하는 경우 기업이 인증을 받을 가능성은 더욱 커지며, 인증제도의 확산도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경제사회학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연결망 자원이다. 기업과 기업 혹은 기업과 행정기구 등은 공식적인 관계 외에 개인들 사이에 형성된 사적인 관계에 의해서도 연결된다. 이러한 연결망은 때때로 공식적인 절차로는 이루어지기 힘든 일들을 성사시키는 데 사용된다. 한국의 경우 대표적인 경우가 기업가의 학연 등에 의해 형성된 연고주의나 그 외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형성된 기업 간 연결망을 들 수 있다. 벤처기업 인증을 획득하는 과정에도 이러한 자원들이 동원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비공식적 자원들이 벤처기업 인증과정에 실제로 효과를 미치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 경험적 분석의 결과, 불확실성의 정도나 유형, 그리고 비공식적인 사적 연결망의 존재 가능성이 벤처기업 인증까지의 기간에 유의미한 효과를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255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건사 분석의 결과, 기업이 직면한 외부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기업의 내재적 속성이 불안정할수록 보다 빠른 시일 내에 벤처기업 인증을 획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연결망 자원이 존재하거나 그러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도 인증까지의 시간이 단축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벤처기업 인증제도와 관련해서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가진다. 벤처기업 인증제도를 실시한 원래의 의도는 유능한 벤처기업, 즉 신뢰할만한 시장 행위자를 선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안정적인 게임의 원칙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개별 기업이 이를 기회주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공식적인 절차와 함께 이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비공식적인 과정이 존재한다. 흔히 연고주의로 불리는 관계망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기업들이 이러한 비공식적인 자원을 활용하여 제도적 승인을 확보하려 할 경우 시장 신뢰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원래의 의도가 왜곡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시장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신뢰의 기초가 확립되기 이전에 위로부터 일률적으로 신뢰가 부여되는 경우, 이는 자칫하면 “신뢰의 오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