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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소비사회에서의 "재현"의 위기와 이데올로기 비판의 가능성 :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를 중심으로-

2016년 10월 07일 09시 56분


 

초록

현대적 소비의 영역에서 경험되는 다원성과 차별성의 경향, 그리고 ‘포스트주의’의 이론적 흐름 속에서 표출되는 ‘진리의 희석화’와 상대주의의 개방은, 공통적으로 보편적 가치와 궁극성을 거부함으로써 전통적인 재현과 비판의 체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본 논문이 고찰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러한 ‘재현의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비판의 가능성이 유지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본 논문은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시뮬레이션 이론을 이데올로기 비판의 관점에서 독해함으로써 전통적인 비판의 절차가 근거하고 있었던 현실/재현, 현실/이데올로기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다른 방식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구성하고 그에 따른 비판의 절차와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1) 보드리야르 초기의 소비사회에 대한 분석에서 방법론적 틀로서의 기호체계의 형식적 구조를 추출하는 작업, (2)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기호체계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양상 속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을 구성하는 작업, (3) 상징교환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 비판의 절차와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 사회의 소비에 대한 분석에서 보드리야르는 사물의 기능과 주체의 욕구 사이의 등가라는 전통적인 소비개념을 비판하고, 현대사회에서 사물의 기능이 체계 내의 효과로서 소비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물의 기능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출현한다는 사실로부터, 기능의 선험성은 의심받으며 사물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의 요구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보드리야르는 사물의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의 코드 속에서 구성되는 추상적인 사회적 형식임을 밝힘으로써 맑스주의의 핵심적 전제와 결별한다. 사물의 가치가 그것의 표현물(기표, 교환가치)에 의해 구성되는 역설 속에서 상품형식은 기호형식으로 통합되며, 정치경제학 비판은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해소된다.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은 기표/기의의 일반적 구조 속에서, 기표의 특권적 위치를 파악한 것에 있다. 다시 말해, 보드리야르에게서 기호는 기표의 지배를 위해 기의가 종속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핵심적인 기초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호는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해석된 기호는 시뮬레이션의 이론 속에서 현실의 지배라는 일반적 문제로 확장된다.

시뮬레이션의 기본적 역설은 기호가 재현하는 현실이 재현 ‘이후에’ 온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설은 현실이 기호에 의해 구성되는 것인 동시에, 기호의 재현을 위해 현실이 통제되는 상황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기호는 순수한 재현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지배하는 권력의 양상을 띠고 있다. 본 논문에서 주목하는 것은, 현실 지배로서의 기호체계가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보드리야르는 푸코의 권력 이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속에서, 담론이 현실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배제와 절단의 과정을 지적한다. 이는 기호에 의한 현실 구성이 완성될 수 없는 지점, 즉 재현 이후에 남아 있는 잔여물로 인한 기호체계의 한계와 불가능성을 지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호체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이러한 지점을 배제하고 은폐해야만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문제틀과 만나게 되는 통로를 발견한다. 보드리야르의 이데올로기 정의, 즉 ‘상징적인 것에서 기호적인 것으로의 환원’은 기호체계의 불가능성을 지우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개념은 그 비판에 있어 새로운 절차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이데올로기 개념이 현실의 은폐에 의한 권력의 작동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 비판의 절차가 현실에 대한 객관적 재현을 통한 허위의식의 폭로였다면, 보드리야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은 기호체계의 불가능성을 은폐하며, 비판의 절차는 이러한 불가능성을 드러냄으로써 기호체계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비판의 준거로서 작용하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상징교환(symbolic exchange)’ 개념이다.

모스의 ‘선물’과 바타이유의 ‘일반경제’로부터 이어지는 상징교환 개념은, 그 계보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자본주의적 현실원칙과 대립되는 자유와 무질서의 영역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드리야르에 대한 많은 해석들이 이러한 점을 들어 상징교환 개념을 낭만적이고 향수적인 개념으로, 따라서 순진한 유토피아적 발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상징교환 개념은 시뮬레이션의 단순한 대립물이 아니라, 기호체계가 구성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와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본 논문의 관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상징교환과 시뮬레이션의 관계는 내재적이다. 다시 말해 상징교환은 시뮬레이션의 외재적 대립물(external opposition)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동시에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내재적 한계(internal limit)''이다.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통해 시뮬레이션이 유지된다는 것은, 이러한 내재적 한계를 외부화시킨다는 것을, 따라서 자신의 한계가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설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징교환을 통한 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러한 한계를 시뮬레이션 내부로 재도입하는 것에 있다. 이 때, 시뮬레이션은 치명적인 적대의 공간으로 돌변하며, 자신의 정당성이 심판되는 근원적 시점으로 돌입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드리야르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시뮬레이션 내부의 한계와 불가능성을 드러냄으로써, 기호의 지배에 도전하고 현실을 구성하는 새로운 원리를 창출할 것을 겨냥하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비판양식이 궁극성에 기반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히 무정부주의적 자유의 노선으로 귀결되지 않는 이유는, 상징교환이 시뮬레이션의 내재적 비판이라는 점에 기반하고 있다. ’궁극성에 기반하지 않는 비판의 가능성‘은 내용의 자유가 아니라 기호체계의 헤게모니적 원리로서의 형식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