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03시 50분
초록
본 연구는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 대만 타이페이2·28평화기념공원, 제주4·3평화공원 등 동아시아 세 곳의 평화기념공원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비교연구를 수행했다. 이 세 곳의 평화기념공원은 영웅주의와 피해자 민족주의에 기대어 국민국가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기존의 추모시설과는 달리 국민국가 내부의 균열을 드러내는 추모시설이다. 국민국가 외부의 적이 아닌 국민국가의 영웅들에 의해 사망한 국민국가 내부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시설이기 때문이다. 이것 이외에도 이들 세 곳의 평화기념공원은 세 가지의 공통점을 갖는다. 평화기념공원 조성의 시기가 유사하며, 평화기념공원이 위치한 지역이 국민국가 내에서 갖는 주변으로서의 위상이 비슷하다. 이들의 마지막 공통점은 평화라는 명칭 자체에 있다.
본 연구는 이 네 가지 공통점을 낳게 한 공통의 규정력을 전제한다. 그것은 개별 국민국가 수준을 넘어서는 동아시아적 힘인데, 본 연구에서는 이를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라고 명명한다. 본 연구에서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의 변동은 개별 국민국가 차원에서 진행되는 평화기념공원 형성과정의 비교연구를 위한 공통의 역사적 맥락으로서 기능한다. 세 곳의 평화기념공원 성립과정에 대한 비교연구는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의 성립 및 변동이라는 국면에 따라 수행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오키나와전, 대만2·28사건, 제주4·3사건을 식민지-제국체제 해체 이후 냉전-분단체제라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한 ‘창법적 폭력(創法的 暴力, die rechtsetzende Gewalt)’으로 규정했다.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가 첫 번째 변동기를 맞기 전까지 창법적 폭력은 이항대립적이고 상호배제적이며 적대적인 내용을 특징으로 하는 냉전-분단적 해석에 의해 지배되었다. 특히 승리자의 해석은 창법적 폭력에 대한 그 사회의 공공기억을 구성하게 되었고 과거 도전세력들의 해석이 다시 부상하지 못하도록 폭력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대만2·28사건과 제주4·3사건은 이런 방식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오키나와전에 대한 패배자(일본)의 기억은 비교적 빠른 시기에 부활하여 지배적 해석으로 자리잡았다. 그것은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에서 오키나와와 나머지 두 지역이 차지하는 위상이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에서 체제의 중심인 일본은 데탕트 시대의 냉전약화-분단해소의 효과로 오키나와와의 분단이 해소되었으며, 이 때문에 오키나와전에 대한 일본의 해석이 공식화할 수 있었다. 반면, 똑같은 시기에 체제 주변인 한국과 대만에서는 오히려 냉전강화-분단심화라는 효과가 발생하였고, 이것은 승리자의 해석을 강화시켰다.
정치적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창법적 폭력에 대한 대안적 해석들이 세 곳 모두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창법적 폭력에 대한 이런 대안적 해석은 모두 사건이 발생한 ‘지방’의 상황을 우선시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또한, 창법적 폭력이 발생한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이런 대안적 해석은 희생자들의 복잡하고 복합적인 성격을 부각하였고, 이에 따라 가해자 및 피해자의 규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창법적 폭력에 대한 대안적 해석의 제도화에 영향을 미친 변수는, 대안적 해석을 제기하는 세력의 주체적 역량과, 기존의 지배적 해석을 지지하는 세력의 저항의 강도였다. 대안적 해석을 제기하는 세력과 기존의 해석을 지지하는 세력 사이의 힘 관계는 창법적 폭력에 대한 ‘이행기 정의’의 모델이 이 세 지역에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게 했다. 창법적 폭력에 대해 대안적 해석을 제기한 세력들의 주체적 역량은, 그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로 측정될 수 있었다. 민주화 운동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던, 대만2·28사건 ‘평반’운동 세력은 2·28사건에 대한 ‘이행기 정의’를 ‘진실·정의’ 모델로 수행하려고 했던 반면, 민주화 운동이 확장시켜 놓은 정치적 기회구조를 사후적으로 활용했던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 세력들은 ‘진실·화해’ 모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