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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발터 벤야민의 산보객(Flaneur) 개념 분석: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

2016년 10월 07일 10시 30분


초록

본 논문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아케이드 프로젝트Arcade Project』에 드러나는 산보객 개념에 주목한다. 마천루들이 즐비하고 백화점과 지하아케이드가 미로처럼 얽혀 있는 이 도시라는 공간, 과연 도시공간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우리는 이 대도시를 어떻게 누빌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본 연구는 벤야민의 산보객 개념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도시공간에 대한 벤야민의 지적 성찰을 통찰해 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산보객Flaneur이란 도시를 급할 것 없이 완보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는 행인을 말하는데, 벤야민의 산보객은 도시를 태만하게 산보flanerie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벤야민의 산보객은 현대 대도시 현실을 적확히 체감하는 인물이다. 21세기의 도시인들처럼 산보객 역시 도시의 속도전에 환멸을 느끼지만 또한 동시에 상품물신의 환상세계에 눈이 먼다. 두 번째, 벤야민 산보객 개념은 모호하다. 벤야민이 산보객에 대해 견지하고 있는 시선은 양가적이며, 사실상 그가 산보객에 대해 확언한 것은 없다. 즉『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산보객은 상품의 환영에 현혹되는 소비자에서부터 도시의 망각된 유물을 모으고 이를 해독하는 관상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면들을 응축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함은 산보객을 일면적 주체가 아닌 입체적 주체로 재탄생시킨다. 산보객에 내재된 부정성과 긍정성은 오히려 도시공간의 패러독스를 생생히 드러낼 수 있는 장점으로 가공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벤야민의 산보객 개념을 분석해보았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산보객은 벤야민의『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어떠한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 둘째, 벤야민의 산보객 개념이 지니고 있는 이론적 가능성은 무엇인가.

본 논문에서는 벤야민을 미학자, 문예비평가로 평가하기보다 현대 대도시의 시각적 현실을 예리하게 해독한 도시사회학자로 간주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벤야민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본주의 도시공간을 독해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오늘날 도시공간을 이해함에 있어 벤야민의 산보객 개념이 어떠한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했다.

논문의 틀은 크게 4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논의는 벤야민의 학문적 세계를 조명한 연구다. 본 논문은 발터 벤야민이라는 학자가 국내 사회학의 장에서는 여전히 ‘논의되지 않고 있는’ 사상가임을 감안하여 벤야민의 생애와 이론적 개념을 충실히 소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두 번째 논의에서는『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지니고 있는 의미의 결을 헤아려보고, 벤야민의 학문세계에서 본 저서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서술해보았다. 벤야민의 저서목록에서『아케이드 프로젝트』혹은『파사젠베르크Passgen-Werk』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벤야민은 문예비평이나 문화평론 등지와 관련해 글을 썼지만, 도시에 관련해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중 아케이드 연구는 벤야민이 죽기 전까지 약 13년 여간 매달린 작품으로, 도시에 대한 그의 지적 성찰이 집약적으로 수렴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러하기에 방대한 메모묶음으로 이루어진『아케이드 프로젝트』는 19세기 파리 문화사를 총체적으로 구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도시 모더니티가 빚어내는 양상들을 기민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하겠다. 이에 본 연구는 도시문화연구에 있어 벤야민의 도시분석이 가지는 강점을 기술하는 동시에『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사상적 함의를 분석해보았다.

세 번째 논의는 산보객 분석에 관한 것이다. 인용 및 단상으로 구성된『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맑스의 물신성 개념에 대한 독창적 해석 뿐 아니라 인용에 대한 벤야민 특유의 감각을 엿볼 수 있게 하지만, 무엇보다도 산보객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은 모더니티를 체현하는 주요 인물로 산보객을 인식할 뿐 아니라 그 스스로가 산보객이 되어 파사주를 비롯한 도시공간을 누볐다. 이 과정을 통해 산보객은 기존 역사서술에 편입되지 못했던 일상의 영역들을 조명하고, 이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이렇듯 산보객은『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19세기 파리공간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산보객을 분석하기 위해서 본 논문은 산보객의 출현배경과 의미를 파악하고, 그러한 산보객이 사상사적으로 어떻게 수용되어왔는지를 가늠해보았다. 동시에『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드러나는 산보객의 외현을 파악하고자했는데, 본 분석에서는 벤야민이 그려내는 산보객의 모습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해보았다. 즉 상품물신에 현혹되는 판타스마고리아(환영, 환등상), 군중을 탐색하는 탐정, 유유자적한 댄디 그리고 도시의 물리적 환경 이면에 역사가 남겨놓은 흔적들을 해독하는 관상학자로서의 산보객이 그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본 연구는 이러한 산보객 개념이 지니고 있는 이론적 함의에 대한 내,외재적 평가를 내놓았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산보객은 벤야민의『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어떠한 함의를 지니고 있는가’에 관한 응답으로서 내재적 평가에서는 관상학자로서의 산보객이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담지하는 역사가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과거의 잔해들을 수집하고 해독하는 작업이 생성한 파편들을 산보객은 몽타주를 통해 재배치하는데, 이는 곧 유물론적 역사가의 작업이라 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보객의 작업을 통해 숨겨지고 잊혀진 과거의 순간이 현재시간에서 다시 ‘구원’될 수 있음을 상기해 볼 때, 관상학자로서의 산보객은 충분히 역사가로서 인식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본 논지의 핵심이다.

‘벤야민의 이론 내에서 산보객이 역사가의 임무를 수행한다면, 이론 외적으로는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 이에 외재적 평가에서는 자본주의 도시공간을 걷기로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산보를 ‘도시걷기’로 확장시켜 산보객 개념을 살펴보았다. 사실상 벤야민의 산보객 개념은 ‘현대도시공간을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맞닿아있다. 따라서 본 논의에서는 보들레르와 초현실주의, 벤야민을 거친 산보객이 20세기에 들어와 기 드보르Guy Debord나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같은 상황주의자들에 의해 전략적인 저항주체로 재해석되었다는 점을 강조, 벤야민의 산보객 개념과 상황주의자들의 저항적 주체개념을 비교분석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본 평가에서는 벤야민의 산보객이 ‘현대대도시현실을 적확히 체감하는 인물’이자 ‘입체적 주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산보객 개념이 지니고 있는 이론적 장점을 설명하는데 집중해보았다.

마지막 논의는 결론으로, 산보객의 가능성을 고찰해보았다. 과연 벤야민의 산보객 개념은 21세기 도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지적 통찰력을 줄 수 있는가. 그와 같은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본 논의에서는 청계천을 예를 들어 19세기의 산물인 산보객을 21세기 서울로 옮겨와 산보객의 현재적 의의를 탐색해보았다. 산보, 즉 걷기라는 행위가 본래 도시공간이 담지하고 있는 특유의 장소성sense of place을 복원하고 삶의 기억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산보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