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7일 11시 15분
본 연구는 노동 중심적 삶을 강요받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20‧30대 기혼여성의 일의 의미가 여성 노동의 특성, 계층, 연령, 생애사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구성되었고, 여성들이 처한 조건과 환경에 따라 어떻게 일과 가정 양립모색의 차이를 형성하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 목적에 따라 15명의 20‧30대 기혼여성과 두 명의 배우자를 인터뷰하여 그들의 일의 의미와 일과 가정의 양립의 의미,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모색하는지를 분석하였다.
자기성취욕구가 강한 응답자들에게 일은 대체로 현실적 상황을 따져가며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상적 속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렇게 이상화된 일의 의미는 가족구조에 편입되면서, 특히 출산을 경험하게 되면서 커다란 전환을 맞는다. 먼저 모성이 강화되면서 일은 왜소화되고, 가정에서 비롯된 자기애의 실현과 대치되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일은 자녀 양육현실에 봉착하면 양육비를 벌기 위한 세속적인 일로서 의미를 바꾼다. 이러한 일의 의미의 변화는 주로 두 가지 가족적 상황에 매우 종속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녀의 성장단계, 그리고 배우자의 경제적 지위이다. 이와 같이 여성의 일의 의미는 여전히 자녀양육과 남편의 경제적 지위라는 가족의 상황에 따라 변형되고 이에 적응하고자하는 ‘가족중심성’을 지닌다.
가족중심성에 의거하여 여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모색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제도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이나 교사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육아휴직과 같은 일-가정 양립제도의 활용을 극대화 하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모색했다. 반면 이러한 제도로부터 배제된 여성들은 자신의 직업적 위치에서 제도의 차별 지점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다른 전략을 통한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모색한다.
여성의 직업조건을 불문하고 가장 보편적인 양립방안은 가족을 활용한 것이다. 특히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비롯한, 전적인 혹은 보조적인 돌봄 제공은 여성이 아이에 대한 외부적 위험으로부터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건이었다. 또한 배우자의 가사분담을 비롯한 여성의 일에 대한 존중과 지지도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을 통한 일과 가정의 양립도 가족의 경제적 지위나 배우자의 직업이나 사회경제적 지위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여성들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여성에 따라 ‘모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어떤 여성의 경우는 ‘모성과 거리두기를 하는 방식’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이는 여성들의 ‘일의 성격’, 혹은 ‘일의 의미’와도 상관이 있었는데,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어느 정도 직업적 성취가 완료된 여성들은 모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모색하는 반면, 계속적으로 직업성 성취를 달성해야하는 대학원생 같은 경우에는 의식적으로 ‘모성’을 절제하면서, ‘아이’와 거리두기를 통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한다.
일-가정 양립 제로로부터 배제된 여성들은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모성을 견지하거나하는 방식으로도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도 하지만 출산을 조절하거나 자신의 ‘일’을 변형시켜가며 양립을 실행하기도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출산을 미루거나 터울을 당기거나 출산을 중단하는 등을 통해 노동시장으로의 복귀시장을 앞당기고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도권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이탈, 자영업, 프리랜서 등의 시간제 노동으로의 변이를 통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마저 ‘가족적 필요’에 부합하지 않을 때에는 전업주부의 길을 과감히 선택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제도로부터 이들 여성들은 가족중심성에 따라 본인의 일을 주변화 시키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모색하기도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기혼여성들이 보살핌 노동의 부담과 가족 소득의 보충이라는 유급노동의 부담을 가족주기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보정’하면서 살아가거나, 아니면 가사노동과 유급노동을 ‘개인적‧비공식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형태의 일자리, 다시 말해 자영업이나 무급가족종사자와 같은 비공식 부문에 머무는 현상이 20‧30대 젊은 기혼여성들에게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시사한다.